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네가 최고다"의 함정

'세상의 중심은 너다' '네가 최고다'는 부모의 격려나 사회적 구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자부심과 용기를 불어넣는다는 장점과 동시에 '안하무인'인 인간으로 키울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한다. 기자의 초등학생 아들의 학급에서 반장선거를 했는데, 출마자가 26명이었다고 한다. 전체 32명 중 6명을 뺀 모두가 반장에 출마한 것이다. 출마자들은 1차 투표에서 각각 1표, 2표 혹은 3표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402년에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중국, 조선, 일본이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져 있다. 특히 조선은 아프리카나 유럽보다 크게 보일 정도다. 이런 지도가 나왔던 것은 당시 지도제작의 기술적 한계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조선이 군자의 나라이며, 중국과 더불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식, 즉 '소중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지도는 단순히 영토의 크기만을 그렸다기보다, 기자조선과 고려를 거치면서 중국과 대등하고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왔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화적 자존심, 자부심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세계인식이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일반론'으로 확산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동해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명칭논쟁이 식을 줄 모른다. 국제수로기구(IHO)는 1929년부터 세계 각 바다의 명칭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동해의 공식명칭을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한다. 최근에는 미국 수로기구가 국제수로기구에 동해에 대해 일본해 단독표기 의견을 보내, 우리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못마땅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주요 지도는 동해보다 일본해를 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에 종종 '동해 표기 고지도(古地圖)또 찾았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이례적인 예일 뿐, 많은 고지도들이 동해대신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계 탐험이 한창이던 시절, 배를 타고 동해에 도착한 지리학자 혹은 외국 배의 선장이 있다고 치자. 그들이 이 바다의 이름을 물었을 때, 조선 사람들은 '동해'라고 답하고 일본 사람들은 '일본해'라고 답했다고 치자. 독자 여러분이 그 당시 지리학자 혹은 그 배의 선장이었다면 어떤 명칭을 기입했을까?

'동해, 서해, 남해'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동서남쪽에 있는 바다를 일컫는다. 세계의 중심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쪽은 동해, 서쪽은 서해, 남쪽은 남해라는 인식과 유럽이나 아프리카보다 크게 그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당시 우리의 세계관을 정직하게 반영한 것이지만 '틀린 것'이다.

만약 옛날 유럽의 지리학자 혹은 선장이 그 바다를 탐사한 뒤 '동해'라고 표기했다면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동해라니! 대체 어디에 있는 바다라는 말인가?'라는 질문과 비웃음에 봉착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해'라는 명칭은 그 바다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가진 지리학자라면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라고 명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고지도에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가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중심인 동시에 부분이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다. 아이들에게 '네가 최고다'고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너는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다'라고도 가르쳐야 한다. 저 혼자 주인공인 줄 알고 자란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동해'가 위태로운 것처럼.

조두진(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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