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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다시 동화천을 걷다

대구 북구에 위치한 무태에는 대구 유일의 생태하천인 동화천이 흐른다. 팔공산 계곡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군데군데 골짜기를 휘돌아 무태를 지나면 금호강과 합류한다. 예로부터 강은 인간 삶의 젖줄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이 물길 가까운 곳에 마을을 이룬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리라. 그래서 금호강변의 무태는 대구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사는 마을을 이루었는가 보다.

무태로 이사 온 지 7년째다.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함지산의 한 봉우리인 망일봉(望日峯)에 올랐다. 정상에 세워진 무태동(無怠洞) 유래비가 오늘은 더욱 눈에 가까이 들어온다. 그 비(碑)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동수전투 중 신숭겸 장군과 야행을 하다가 보니, 늦은 밤인데도 마을 아낙네들이 길쌈을 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여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뜻으로 무태(無怠)라고 하게 되었으며, 1998년도 신도시 개발 중 신석기 시대 집석 유구와 빗살무늬 토기의 발견으로 대구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살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무태는, 아주 오랜 옛날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사람이 살았던 유서 깊은 곳임이 분명하다.

서둘러 산에서 내려와 다시 동화천을 걷는다. 비 온 지가 오래되어 하천물이 많이 줄었다. 잠수교 아래로 흐르는 물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냇바닥에 무겁게 놓인 바위에 왜가리 한 마리가 긴 목을 늘어뜨리고 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피라미 떼라도 노려보는 것일까.

하천 둑에는 1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2001년 5월 21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수령이 150년 된 나무 앞에는 안내판이 하나 있다. 조선 철종 때 팔공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으로 왕버드나무를 제방에 심었다는 유래가 적혀 있다. 오랜 세월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마을지킴이가 되어 주느라 뒤틀어진 둥치를 감싸고 있는 나무껍질이 세파(世波)를 느끼게 한다.

물길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하천 바닥에서 억새가 하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물길 가까이 뿌리내린 갈대는 꽃대를 높이 올려 이제 곧 꽃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자연그대로인 채 제멋대로 자란 풀, 나무들의 모습이 차라리 푸근하다. 오늘 동화천은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동화천의 한 유역인 연경동에 이르렀다. 보금자리아파트 공사 준비가 시작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2006년, 연경동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되었다. 환경단체에서 택지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현실로 다가온 지금, 대단지 아파트지구 조성으로 인해 동화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앞날을 걱정해 본다.

권영세(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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