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가면 어디를 가봐야 하느냐?'
여행길에 만난 배낭족들에게 물었다. 열이면 열, '포 사우전드 아일랜드'(Four Thousand Island)라는 답이 돌아왔다. 라오스 말로 '시판돈'(Si Phan Don)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4천 개의 섬'이 있다는 곳이다.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 최남부에 위치해 있다. 메콩강 수량에 따라 4천 개의 섬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최남단에서 국경을 넘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을 만한 목적지였다.
◆팍세를 거쳐 시판돈으로
시판돈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아타푸(Attapeu)에서 하루를 보내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팍세(Pakse)까지 가서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오전 8시, 미니 버스를 타고 3시간쯤 달렸다. 나카상(Nakasang)이란 마을의 선착장에서 내려서는 작은 배로 20여 분을 더 가서야 긴 여정은 끝이 났다. 돈콘(Don Khon)에 내려서 방 잡기까지 다시 1시간 정도가 더 걸리긴 했지만….
그러는 동안 새 일행이 한 명 더 생겼다. 바르트(Bart)라는 이름의 벨기에 친구였다. 미니 버스를 같이 탔는데, 숙소까지 같이 잡고는 며칠간 같이 머물렀다. 베트남에서부터 길을 함께한 마뉴엘은 어느새 리더가 돼 있었다. 들고 다닌 독일어판 가이드북 때문이었다. 책에 소개된 숙소를 위주로 알아봤는데, 전부 큰 짐을 하나둘씩 끌고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양새가 됐다.
어쨌든 그 책 덕분에 괜찮은 게스트하우스를 잡을 수 있었다. '분팁'(Bountip)이라는 이름의 숙소였다. 강변에 나란히 자리 잡은 방갈로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곳에서 강 너머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숙소 주인은 라오스 여자(이름이 '분팁'이었다)와 남편인 독일 남자(마이크). 현지녀와 서양남의 결혼 사례는 아시아에서 흔한 것이니 만큼 그러려니 할만도 하지만, 마이크의 개인사가 흥미진진했다.
◆주인남의 흥미진진 개인사
어부 출신이라는 마이크는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가서 일을 했단다. 북부 다윈(Darwin)이란 곳이었다. 어업 일을 하다가 왼쪽 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겪었단다. 상처를 보여줘 농담삼아 '상어한테 물린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이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는 '실화'라고 답을 건넸다. 이 말에 마이크의 발가락 쪽으로 향하는 일행들의 시선.
분팁은 아시아 유랑 중 이곳을 들렀다가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라오스 법상 결혼 전까진 남녀가 숙박업소에서 같은 방에 묵을 수 없게 돼 있다는 점. 혼인신고를 위해 두 사람은 팍세(Pakse)까지 가야 했고, 하룻밤 지내면서 따로 방을 잡아야 했단다.
이게 처음에 들었을 때는 '불편하겠다'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여성 권익보호를 위해서는 '괜찮다' 싶었다. 여행 왔다가 현지 아가씨한테 첫눈에 반해 같이 지내다가도 맘이 변해 훌쩍 떠나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법적으로 결혼인정을 받아야만 같이 살 수 있으니 남자 입장에서도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제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 좀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이 남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나쁘지 않은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갈 길이 먼 라오스
두 사람이 딸처럼 키우고 있는 조이라는 꼬마 애도 있었다. 분팁 친척의 딸인데, 부모가 사망하는 바람에 키우게 됐다고 한다. 웃는 모습이 아주 귀염상인 조이는 학교 가는 대신 게스트하우스 일을 도우며 지내고 있었다. 분팁 말로는 "조이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일을 배우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인의 경험도 반영한 결정인 듯한데, 학교를 보내느냐 마느냐, 이 문제는 며칠 지내다 가는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가타부타 말하기 힘든 문제였다. 남편인 마이크도 "반대는 하지만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들으니, 학교교육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 정도라고나 할까?
생각을 달리해, '아직 저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스 현실에서는 학교교육 대신 일찌감치 일을 배우고 사업을 하는 것도 기회를 찾는 입장에서는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것은 인도 남부 바르칼라(Varkala)에서 만난 한 인도남의 사례. 인도에서 최하위 카스트 출신이었던 그는 나름의 노력으로 자수성가, 자기사업을 일궈냈다. 그리고는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다.
octocho@gmail.com
octocho.tistory.com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