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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영국의 '애프터눈 티'

1662년 포르투갈의 캐서린이 찰스 2세에게 시집오면서 차와 설탕을 가져온 것이 영국 홍차 역사의 시작이다. 왕실에서 시작된 차문화는 귀족층으로 퍼져나갔고, 영국의 전통술 애일(ale)에 절어 지내던 대중들은 점차 차를 술 대신 마시게 되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티브레이크(Tea break)를 시행할 정도로 차는 온 계층에 퍼져나갔다.

지난여름 영국으로 홍차기행을 떠났다. 런던에는 홍차와 관련된 볼거리가 참으로 많았다. 1676년 문을 연 이래 디킨스 등 유명인이 즐겨 찾았다는 티하우스 조지 인(George Inn)과 왕세자가 참석하는 티파티가 열렸다는 복스홀 가든(Vauxhall Garden)이 대표적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티파티를 열었다는 버킹엄궁은 홍차문화에서도 의미 있는 명소다. 코벤트 가든 근처의 차 판매점 티하우스(Tea House), 위타드(Whittard) 등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코스다.

영국 홍차 문화의 꽃은 역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다. 1841년 베드포드 공작부인 안나 러셀이 귀부인들의 오후 티타임에 스콘과 샌드위치, 마카론, 비스킷 등 간식거리를 곁들인 것이 그 시작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하기도 하였다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귀부인들의 애프터눈 티 문화는 중산층이 모방하기 시작하고, 끝내 노동자 계층으로까지 번져나가 영국인의 일상이 되었다.

영국은 애프터눈 티라는 전통문화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영국여행의 필수 아이템으로 정착시켰다. 가장 화려하다는 리츠 호텔의 애프터눈 티는 6개월 전에 예약이 끝나버린다. 한 사람에 10만원이 넘는 비싼 값에, 정장을 입지 않고는 입장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살았던 켄싱턴궁에 있는 오랑제리 티룸은 예약을 받지 않고 몇 시간씩 줄을 서게 만든다. 이 티룸에 들어서려고 뙤약볕에 한 시간 넘게 땀 흘리며 서 있었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무런 불평이 없으니, 그저 따를 수밖에. 포트넘앤메이슨, 트와이닝 등 티숍의 애프터눈 티 서비스도 발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영국에는 전통과 현대문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런던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타워 등 오래된 유적이 보존되어 있어 세계인을 놀라게 한다. 아울러 타워브리지와 런던아이 등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역사를 축적해 가고도 있다. 이는 건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티하우스 조지 인은 전통을 지닌 묵직한 펍(pub)으로 성업 중이다. 튀김 옷 입힌 생선과 썬 감자를 튀겨서 만든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는 서민적인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을 살린 고급 애프터눈 티 문화는 가장 성공한 영국의 관광 상품이다. 전통을 살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적절히 만들어가는 이런 점이 관광 입국을 내세우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닐까?

박정희<원광디지털대학 차문화경영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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