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전신마비 엄마 돌보는 다영이

엄마 간병에 학업마저 중단한 '사춘기 천사 소녀'

사진설명=김혜선(가명
사진설명=김혜선(가명'41'여) 씨는 불의의 사고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보다 딸 다영이(가명'14'여)가 더 걱정이다. 다영이는 학교까지 쉬고 엄마 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하루빨리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싶지만 다영이의 소박한 꿈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중학교 2학년인 다영이(가명'14'여)는 일주일째 교복을 입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학교에 60일간 병가를 냈다. 겉모습은 철없는 중학생이지만 다영이는 누구보다 씩씩하다. 엄마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그런 다영이에게 학교 이야기를 꺼내면 안색이 어두워진다. 지금 다영이는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평범한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다.

◆쓰러진 엄마

2011년 9월 7일 오전 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식당일을 마치고 2층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김혜선(가명'41'여) 씨는 발을 헛디뎠다. 김 씨는 4m 정도 높이에서 1층 바닥으로 떨어졌고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김 씨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수십 번 소리를 질렀지만 2층에 있는 식구들은 그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3시간이 더 지났을까. 이른 아침 동네를 거닐던 주민이 김 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추락하면서 경추가 심각하게 손상됐습니다." 김 씨는 그때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뻣뻣해진 자신의 몸을 보고서야 그 말이 '움직일 수 없다'는 뜻임을 알게 됐다. 사고 당시 사지가 완전히 마비됐던 김 씨였지만 지금은 왼손과 왼쪽 다리를 조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엔 거의 없다.

◆'억척 엄마' 혜선 씨

김 씨는 억척 엄마였다. 낮에는 집에서 우산과 장갑을 포장하는 부업을 했고 저녁에는 샤브샤브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며 돈을 벌었다. 김 씨는 삼 남매의 엄마다. 상근 예비역인 큰 아들 정훈이(가명'21)와 둘째 다영이, 초등학교 3학년인 고영이(가명'9'여)를 위해서라도 아등바등 살아야 했다. 건설 현장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는 남편(45)은 경기도 수원에서 일하며 일감이 있을 때마다 집에 돈을 부쳤다. 하지만 불규칙적인 남편의 수입에 의존할 수 없어 김 씨까지 생업에 나선 것이다.

남편의 몸도 성치 않다. 13년 전 겨울에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에 남편은 지금도 오른쪽 다리를 전다. 당시 사고는 김 씨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다. 과실로 앞에 있던 트레일러를 들이박아 사고를 낸 남편은 크게 다쳐 6개월 넘게 병원 신세를 졌다. 목돈이 없었던 김 씨는 사고 수습과 남편 입원비, 수술비 등을 대기 위해 친척과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다. 김 씨는 "그때 진 빛 수천만원을 아직도 다 갚지 못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졌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남편 명의로 된 신용카드로 병원비를 냈다가 갚지 못했고 남편은 지금도 신용불량자로 남아 있다.

◆흩어진 식구들

가난은 온 식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집도 김 씨 식구에게 큰 부담이었다. 보증금 200만원에서 매달 30만원씩 월세를 제했는데도 방세가 여섯 달 넘게 밀리자 집주인도 견디지 못해 방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달 추석을 쇠고 아이들은 엄마가 없는 집에서 짐을 쌌다. 병원에 있는 김 씨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당분간 병원에서 지내면 되지만 세 자녀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기 때문이다. 가난한 살림에 챙길 짐도 별로 없었다. 낡아빠진 가구는 몽땅 버리고 옷가지만 챙겨서 동네 이웃집에 잠깐 맡겨뒀다. 현재 정훈이는 고등학교 친구 집에서, 막내 고영이는 김 씨와 친한 동네 주민 집에서 지내고 있다. 갈 곳 없는 다영이는 엄마 병원을 집 삼아 끼니와 잠을 해결하고 있다.

"애들이 걱정이죠. 애들이…." 김 씨는 애들 걱정에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아이는 둘째 다영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김 씨를 돌봐주는 무료 간병인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도 간병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해서 다영이가 24시간 그의 곁을 지킨다. 다영이가 오랫동안 학교를 가지 못하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까봐 김 씨는 항상 걱정이다. 다영이는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김 씨 병원 식사에 공기밥을 추가해 나눠 먹는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엄마 곁을 지키는 것이 화날 법도 한데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 심부름까지 해주며 밝게 생활해 주변인들이 다영이를 보고 '기특한 딸'이라고 칭찬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엄마 휠체어를 밀고 있는 다영이에게 취재진이 "병원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엄마를 간호하는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아요. 대신 빨리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공부하고 싶어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 지금 다영이가 바라는 전부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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