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우리에겐 왜 胡志明(호찌민)이 없나

지난달 4박 6일 일정으로 캄보디아'베트남을 다녀왔다. 대구문인협회 해외문학기행단 일원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하롱베이 등을 둘러봤다. 해외여행의 매력이라면 이국적인 볼거리에다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음식을 들 수 있겠다. 여기에 하나를 더 꼽는다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안겨준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캄보디아'베트남 여행에서 우선 느낀 것은 대한민국의 위상(位相)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도시 시엠립 곳곳에선 한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게 간판은 물론 호텔이나 식당 등 곳곳에서 우리글이 숱하게 보였다. 호텔'식당 종업원들에다 아이들까지 우리말을 곧잘 했다. 앙코르와트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한 해 20만~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캄보디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당연한 현상'이라고 가이드는 귀띔해줬다.

한국의 위상이 드높기는 베트남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하노이에서 시클로를 태워주던 운전사는 곳곳에 보이는 우리나라 자동차를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1970년대에 우리가 미국이란 나라를 대했던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하나로 손꼽는다는 말도 들었다.

그다음으로 캄보디아'베트남 여행 동안 계속 머리를 맴돈 생각은 국가 지도자들은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시엠립 시내 한 사원에서 만난 유골탑. 바로 킬링필드 때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뼈와 팔'다리뼈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유골은 생경하게 다가왔고 안타까움, 슬픔도 같이 밀려왔다. 킬링필드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폴 포트(Pol Pot)다. 그는 3년 8개월 집권 기간에 지주, 자본주의자, 지식인과 반대파 등 200만 명을 숙청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희생될 정도로 참혹했다. 자신의 이념에 맞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지도자의 그릇된 행동으로 20세기 최악의 만행이 저질러진 것이다.

비 오는 가운데 찾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 '호찌민영묘'. 총을 든 간디로 일컬어졌던 베트남 지도자 호찌민(胡志明)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호찌민은 유교적 교양을 쌓은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베트남 독립을 설계하고 프랑스와 미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민족 지도자였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유해를 화장한 다음 베트남 북부, 중부, 남부에 나누어 뿌리고 장소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유언을 지키지 않고 유해를 방부 처리한 다음 영묘를 만들어 베트남 국민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그를 참배하면서 나라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과 미래를 위한 다짐을 하고 있다.

호찌민이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이룬 업적과 함께 그의 검소함과 청렴함에 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호찌민은 유산으로 옷 몇 벌, 지팡이 등을 남겼을 뿐이다. 지방으로 순시를 나갈 때면 밥에다 돼지고기 볶은 것을 얹은 도시락을 직접 싸갖고 갔다.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 손수 만든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프랑스 총독이 살던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관리인들이 살던 오두막에 살았다. 그의 청렴한 생활에다 인자함에 끌려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을 '호 아저씨'(Bac Ho'伯胡)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갖가지 비리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속출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왜 우리는 호찌민 같은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가 하는 상념이 여행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국민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그 나라 국민에게 더 없는 행운이자 행복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후손들에게 삶의 등대가 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용기와 열정의 불꽃이 되기도 한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호찌민처럼 시대를 넘나들며 온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있는지 되묻게 됐다. 나아가 호찌민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이미 갖고 있는데도 이념 논쟁에 휩쓸려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는 데 실패하고 있지 않은지 계속 곱씹어본 여행이었다.

이대현(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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