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 행복칼럼] 유행가

어린 새가 어미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얻어먹고 재롱을 부리는 건 본능적 행동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행동일까? 이런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도 되는 듯 묻는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아! 그거야 새끼가 엄마를 따라다니는 건 본능적 행동이지 뭐. 그따위를 무슨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눈초리이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다. 새끼 새는 그 알 껍데기를 깨고 나올 때 맨 처음 본 물체나 소리를 엄마의 모습이나 소리로 착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은 일평생 지속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각인된 현상을 명기라고 한다.

나는 오페라 카발레리나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좋아하며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을 들으면 가슴이 저미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베토벤의 로망스도 좋다. 그러면서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좋고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행가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일제강점기 때 것도 있고 어린 시절이었던 해방 전후의 노래도 있다. 왜 그런 시절의 노래를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왜 요즘 노래보다 그 시절 유행가가 더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질까?

해방 직후에 태어나 곧이어 한국전쟁을 치르며 자란 탓에 정상적인 도회지 생활마저도 옳게 못 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어나자마자 대구 10'1사건을 맞았고 초등학교 때는 전쟁이 터졌다. 대구 거리는 전국에서 모여 온 피란민과 한국군 그리고 국제연합군이 뒤범벅이 되어 사람의 비빔밥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우성과 외국 말, 이북 말 그런 이질적 언어들 그것들이 나의 고향 소리로 명기되었다. 종전 후 도시가 개발되면서 초라했던 내 고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유행가는 시대의 상징이다. 피란민 어린아이들한테서 적기가도 듣고 일제강점기 때의 처량했던 유랑극단, 만주 벌판의 노래와 일본 군가에서부터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노래, 미군을 따라온 서양풍의 노래, 맘보, 차차차, 블루스를 들으며 자랐다. 내 고향의 소리는 온통 언어의 아우성과 소음과 이런 노랫소리밖에 없었다.

나의 직장 후배들이나 심지어 우리 가족들도 왜 내가 그런 '시시해 빠지고 시대착오적'인 노래를 즐겨 듣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북 실향민들이 명절만 되면 두만강 푸른 물에서부터 삼팔선의 봄을 부르듯 남한에 살면서도 고향을 잃어버린 또 하나의 실향민이 된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각인된 정다운 고향 소리를 기억해내고 다시 불러 보는 것이 바로 나의 유행가와의 만남인 것이다. 혹시 당신의 주변에서 옛날 유행가 소리가 들리면 짜증을 내지 말고 저게 바로 저 사람의 고향 소리인가보다라고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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