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용기술봉사에 앞장서는 김순희 민들레봉사단장

그늘진 이웃 30년 넘게 도움의 손길…"봉사는 제 생활의 일부"

미용기술을 발휘해 그늘진 이웃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민들레봉사단. 많고 많은 들꽃이름 중 왜 하필 '민들레'일까.

가요제목 '일편단심 민들레'에서 봉사단 명칭을 땄기 때문이다. 기왕 시작한 봉사, '끝까지 가자'는 결의에 찬 이름이다. 미용업계에 종사하는 18명의 회원이 3개조로 나눠 매월 한 번씩 복지시설을 찾아 그들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어울린 지 올해로 8년째. 그 구심점에는 '봉사는 생활의 일부'라는 김순희(54·사진) 단장이 있다.

"우리가 가진 기술과 재능으로 남을 도와주는 게 그냥 행복하죠. 있는 기술에 있는 도구를 챙겨 시간만 내면 어디든 달려가 기술봉사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성주가 고향인 김 단장은 35년 전 고교졸업 후 미용기술을 익혀 대구시 달서구 감삼동에서 작은 헤어숍을 열었었다. 이때부터 그는 남몰래 동네 경로당 할머니들과 복지시설을 찾아 무료로 미용봉사를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30년 넘게 숨은 봉사를 하다 보니 이젠 습관이 됐어요. 봉사라는 게 서로 주고받는 일이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베풂은 절대 아니더라고요. 제 건강과 기술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저에게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게 된 것이죠."

민들레봉사단은 바로 김 단장의 이러한 '행복한 봉사론'에 기꺼이 동참을 선언한 동료 미용사들로 구성됐다. 사실 이전에 1989년 '자미회'란 봉사단에 가입하기도 했으나, 갈수록 회원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어떨 때는 김 단장 혼자서 봉사를 나서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일단 봉사를 시작하면 힘닿는 데까지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고, 그 후신이 '민들레봉사단'인 셈이다. 여럿이 함께 하는 봉사와 별도로 그는 처음 헤어숍을 운영하면서도 인근 홀몸노인이나 가난한 이들에겐 무료미용과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그가 베푼 습관적 봉사로 월 평균 20여 명이 혜택을 입었다.

"요즘은 그 수가 줄었어요. 아마 정부 지원이 늘고 다른 봉사자들 수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틈틈이 달서구 지체장애인협회와 서구 영락요양원을 찾아 매월 한두 번씩 그만의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렇게 맺은 인연의 시간이 15년을 넘는다. 또 한 소녀가장을 초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비를 대줘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헤어숍과 가발사업을 병행하면서도 김 단장의 이웃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경제적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무료 가발을 해줬다.

"중학교 때 머리카락이 빠진 한 학생은 고교 때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나자 제게 찾아와 눈물로 고마운 마음을 표시한 적도 있어요. 저의 작은 봉사로 사회에서 다시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김 단장의 이러한 봉사 열의가 최근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웃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그는 재정적으로 정부의 복지정책과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음을 깨달았다는 것.

"지금까지 봉사가 주로 기술봉사였다면 이젠 금전적인 봉사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민들레봉사단과 의논한 결과 내달 4일 '사랑나눔 일일카페'를 열기로 했죠. 당연히 수익금 전액은 이웃돕기에 기탁할 작정입니다."

김 단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금까지 자신의 뜻에 잘 따라준 가족과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지금껏 살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봉사 바이러스는 분명 있다는 거죠.(웃음) 이제까지는 숨어서 봉사했지만 이젠 좀 알리고 싶어요."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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