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근대화의 시작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부터였다. 1953년 전쟁 중에 한국경제재건 5개년 계획을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이승만 정권 관료들의 이의가 많아 시행되지 못했다. 그 뒤 본격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이 제기된 것은, 1958년 산업개발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연수 또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면서부터였다.
해외 유학파 중에는 현재 고령에도 불구하고 효성그룹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 송인상 씨도 있었다. 그는 연수를 다녀와 부흥부 장관 자리에 오르면서 경제개발계획이 절실하다고 주장했고,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을 설득하여 미국의 원조자금으로 개발계획을 수립할 것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경제개발에 민간 기업을 적극 참여시켜 그들의 역량을 최대로 활용하고 기술과 자금이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담당하며, '우리도 잘살 수 있다'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줘 참여를 유도하였다.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기초가 되는 기간산업이 중요하다. 에너지산업인 전력, 석유, 석탄과 각종 공작기계들을 여러 지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철도와 도로, 그리고 생산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 선박 등을 제작하고 건조하는 데 필요한 철강공장 등이 그것이다. 그중 철강 산업은 타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초 소재산업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인식한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제철소 건설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차관 제공자가 없어 난항을 겪던 중 수출입은행에서 차관협정이 체결되어 입지를 포항으로 정하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을 설립, 초대 사장으로 박태준(朴泰俊) 씨가 임명되어 철강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박태준은 1927년 9월 29일 경상남도 동래군 출신으로 포항제철을 설립한 기업인이다. '강철왕' 또는 '한국의 카네기'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한국철강산업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며, 호는 청암(靑岩)이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6기 출신으로,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해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1968년 4월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후 10년 만에 포항제철을 연 550만t의 철강을 생산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그의 사주(四柱)는 정묘(丁卯)년, 경술(庚戌)월, 신묘(辛卯)일 생으로 재(財), 관(官), 인(印)이 골고루 분포된 사주에 인성(印星)이 강하게 작용하며, 이름은 화(火)와 금(金)의 기운이 투출되어 관성(官星)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 이름의 성격은 우두머리의 기질이 있어 추진력과 지도력이 뛰어나고 모험심도 남다르며, 사물을 살피는 통찰력과 사명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이름이다. 직업으로는 군인, 경찰, 정치인, 기업인으로도 손색이 없으나 특히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의사나 법조인으로 살면 좋은 이름이다.
철강산업은 모든 산업의 토대가 되기에, 그 발전의 정도가 한 나라의 경제력을 측정하는 지표가 된다. 한국의 제철산업에 막대한 기여를 한 철인(鐵人) 박태준. 그는 철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모래땅, 포항의 영일만에 철의 왕국을 건설하여 선진국 대열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포철을 창업 2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키운 세계철강업계의 거목, 그가 바로 박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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