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학교'직장생활, 육아'부부문제, 대인관계 등 끊임없이 닥치는 숙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때는 누군가에게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고, 내 고민을 들어준 그 누군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고, 해법도 제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멘토'(mentor)다.
사회 전반에 걸쳐 멘토링 열풍이 불고 있다. 방송계에서 학교, 직장, 군대, 가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멘토링(mentoring)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점가에도 멘토링 관련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인주의 흐름이 확대되고 있는 세상 속, 우리는 왜 '친구 같은 조언자'를 갈망하는 것일까?
◆맞춤형 가르침을 주는 멘토
영남대 총무과 직원 김정우(30) 씨는 틈만 나면 취업동아리 학생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취업동아리 출신으로 몇 곳의 대기업에 합격했지만 결국 교직원의 길을 선택한 김 씨는 자신의 취업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
김민지(24'여'식품영양학과) 씨는 "같은 동아리 출신 선배여서 한결 친근감이 느껴진다"며 "특히 요즘은 취업 시즌이라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할 일이 많은데 피드백을 해주는 선배가 있어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추민호(26'화학공학부) 씨 역시 "학생들끼리 모의면접을 하지만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지는데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아쉬움이 많았는데, 선배와 함께 연습을 하니 마치 실전과 같은 느낌이 들어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김정우 씨와 같은 영남대 교직원들로 구성된 '직원 취업컨설팅단'은 공기업이나 대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위한 취업 멘토 역할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직원만 34명. 삼성'LG'SK'CJ'NHN'한국조폐공사'KT 등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 외국계 회사 등 요즘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에 다닌 근무경력이 있는 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 지속적인 상담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취업캠프에도 함께 참가해 노하우를 전수한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등 SNS를 활용해 더욱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취업한 선배들 역시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준다. 846명(2011년 누적 기준)의 졸업생들이 후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맞춤형 멘토가 되어주고 있는 것.
영남대 취업지원팀 권오상 씨는 "졸업생들이다 보니 귀찮음을 무릅쓰고 기꺼이 후배들에게 연락처를 공개하고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며 "심지어는 학교 측의 요청이 없어도 후배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들이 직무설명회를 위해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지혜의 다리
올해 초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멘토제'를 도입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멘토링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그룹 부활의 김태원은 '3등은 괜찮다. 하지만 3류는 안 된다' 등의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깊이 있고 따뜻한, 그리고 때로는 촌철살인으로 출연자(멘티)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단순히 '멋있고 좋은 말'이 아닌 20년간의 무명생활에서 우러난 경험이 어우러지면서 가장 '이상적 멘토'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얼마 전 방송을 시작한 SBS 연기자 발굴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도 멘토제를 채택하고 있다.
'멘토'란 단어는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했다. 트로이전쟁에 나가는 이케타 섬의 왕 오디세우스가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자신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멘토르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리고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까지 20여 년간 아버지를 대신해 텔레마코스를 돌보고 교육하며 오디세우스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훌륭히 길러냈다. 이후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본떠 '지혜로운 조언자, 아버지 같은 스승'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로 '멘토'를 쓰게 된 것이다.
이런 멘토링이 가장 활발한 곳은 교육계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각자가 가진 고민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고 있는 방과후학교 사업의 하나로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고 있는 임재은(안심중학교 1년) 양은 "지난 5월부터 멘토링을 받고 있는데 대학생 선생님이 부족한 과목을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줘서 좋았다"며 "때로는 친언니보다도 더 편하게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나 고민 등을 털어놓고 대학생활에 대한 꿈도 가질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군부대에서도 멘토링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신병과 선임병을 일대일로 짝을 지어 군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업무 노하우도 가르쳐주는 것. 50사단 관계자는 "전우애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고, 좀 더 즐거운 군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전 부대에서 멘토링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서적'컨설팅업체도 인기
이런 멘토링 열풍은 사람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도, 컨설팅에서도 멘토링이 각광받고 있는 것.
김난도 교수가 지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100만 권 이상 팔려나가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대학생 장태호(21) 씨는 "마치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보고 해주는 조언 같았다"며 "모든 것이 경쟁으로만 점철되는 사회 속에서 조금만 뒤처져도 내가 못난 것 같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괴로웠던 마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 외에도 서점가에서는 다양한 '멘토링' 책이 인기를 얻고 있다. '멘토링' '멘토와 멘티' 등의 멘토링 기법 책에서부터 '격려' '언니의 독설' '방황해도 괜찮아' '너 외롭구나' 등 인생 선배들의 따뜻한 조언이 담긴 책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
또 기존 콘서트의 틀을 깬 방송인의 김제동의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가 함께한 '청춘콘서트' 등도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사는 따뜻한 조언으로 가득 찬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 등 멘토링 프로그램이 필요한 곳에 전문적인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멘토링코리아컨설팅 나병선 대표는 "멘토링을 조직해주는 데서부터,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원리와 철학에 대한 강의, 멘토와 멘티가 스킨십을 나누는 방법론과 성과를 관리하는 방법 등에 대해 폭넓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멘토링을 운영하는 많은 단체들이 단순히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주는 것만으로 성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얼마나 전문적 배경지식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나 대표는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멘티가 원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인물이어야 하며,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특히 멘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곤란하며 친구처럼 동료처럼 함께 어깨동무를 해줄 수 있는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많은 경우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멘토 교육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성공적인 멘토링이 되려면 멘티가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멘토를 따라다니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멘토링의 성과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이 때문에 그는 "강의를 할 때 멘토와 멘티가 함께하는 교육을 많이 하지만 특히 멘티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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