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책읽기] 끝나지 않은 전쟁 '원동국제군사법정'

메이루아오, 『원동국제군사법정遠東國際軍事法庭』(北京: 法律出版社, 200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생해지는 기억들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끝이 난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상흔이 아물기는 고사하고 아픔의 기억이 더 뚜렷해지기만 합니다. 그만큼 아픔이 컸다는 의미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뻔뻔함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전범국도 등급과 격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바로 그렇습니다. 전쟁 종결 60주년을 맞는 2005년 일본은 안보리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겠다고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60년이 지나면 범죄의 시효가 소멸이라도 되는 듯, 행한 죄과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듯 국제사회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당시 일본 후생성 정무관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원동군사법정 심판 결과를 부정하고 일본의 제2차 대전 갑급 전쟁범의 죄를 부정하는 주장의 글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메이루아오의 『원동국제군사법정』(베이징: 법률출판사, 2005)을 보면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 지은 자가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전쟁종결 후 연합국이 전범국 독일과 일본을 단죄하기 위해 세운 국제군사법정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당시 연합국은 독일의 누램버그(Nuremberg)와 일본의 동경(Tokyo)에 국제군사법정을 만들었는데 그중 동경에 만들어진 군사법정을 원동군사법정이라고 합니다. 군사법정에서는 전범국지도자들과 전쟁범죄자들을 체포, 감시, 기소하여 판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 범죄자의 우두머리들을 갑급 전범으로 분류했는데 전쟁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발동하거나 침략전쟁을 집행한 책임이 있는 자들입니다. 1946년 1월 19일 반포된 원동국제군사법정헌장 제5조에 따르면 이들 범죄자도 유형별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파괴자, 보통전쟁죄, 반인도죄가 그것인데, 침략전쟁의 기획에서부터 살해, 노역에 이르는 비인도적 행위까지 범죄 행위들을 낱낱이 구분하고 있습니다. 재판과정에 대한 기록들은 당시 일본이 행한 악행과 일본전범들의 죄상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일반 일본인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전범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징용과 사역을 하고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전범자들을 욕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국민들을 사지에 내몰려는 일본 지도자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갑급 전범의 전인들, 부디 제 것 아닌 것에 욕심내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길 빕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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