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마음여행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시적인 방법 중 하나를 꼽자면 소비 행태를 살펴보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돈 쓰는 곳을 알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저축하기를 좋아하는가, 휴가에 관심을 집중하는가 따위를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듯하다. 꼬박꼬박 통장에 채우기를 즐겨하는 이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물일 것이다. 기차표나 비행기 티켓을 자주 구입하는 이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봐도 될 것 같다.

나도 여태껏 눈으로 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남다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생활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풍광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욕망에 흔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에 대한 지출 항목은 언제나 제로를 가리킨다.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연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귀차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짐을 꾸리고 멀리 떠나야 하는 번거로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하다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자리에 붙박아 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몸이 나서는 여행보다 더 자유롭고 시간마저 넘나드는 먼 길을 떠나곤 한다.

비행기 표의 비용을 치르거나 보따리를 챙겨야 하는 수고로움 따위는 필요 없다. 외로울까 봐 염려하여 동행을 구하는 노력은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눈을 보내고 마음만 떠나면 만사형통이다. 주머니가 두둑할 때에는 서점에 가고 용돈이 딸막딸막해지면 도서관으로 향한다.

까탈스러울 것 같은 추사 김정희도 친절하게 시와 그림으로 설명해 준다. 오래 전 그곳 멀리 떨어져 살았던 단테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신곡을 읽어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고 인간관계의 멀고 가까움도 따지지 않고 가장 소중한 자신들의 역작을 보여준다. 오직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어제의 그들과 오늘의 명사들은 아낌없이 지식의 보고들을 내어준다. 지혜롭고 현명한 위인들과의 시간은 육체의 피곤함도 남기지 않고 새로운 지적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행의 설렘은 새로운 공간, 낯선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여행은 구경이 아니라 만남이며 추억이 아니라 양식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좌충우돌하며 세상을 향해 나를 떠나보내는 것은 신나는 일일 것이다. 몸으로 겪어내어 얻은 소중한 자양분이 신체 곳곳에 저장되어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사색과 지식의 세상으로 마음 여행을 출발해 보라. 가슴의 울림이 뇌리에 새겨져 영혼을 넉넉하게 해 줄 것이다. 더 풍성한 내일을 엮어내는 도우미가 되어 주리라 믿고 있다. 때마침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가을이다.

이미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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