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이 한 때 베스트셀러였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실천하면 좋은 인생 충고이다. 금기시하는 죽음을 다루는 책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죽으면서 까지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않는 바램과 도대체 죽어 가면서까지 후회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호스피스의사로 근무하는 내게 물어 온다. 당신의 환자는 무엇을 가장 후회하느냐고. 우리는 평소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은연 중에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후회를 할 것 같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참 이상하죠? 내가 일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으면서 후회하시는 분이 별로 없었어요. 아마 그 책은 일본 사람이야기라서 우리와는 다른가 봐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대신 나는 돌아가신 후에 남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 때 잘 해드릴걸. 집에 한번 다녀오라고 했을 때 다녀올걸. 매운 김치찌개 사다 줄 걸." 등등.
내가 돌보는 사람들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힘이 드세요? 그리고 이제까지 참 잘 사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든 내일이 완벽히 보장된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내일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늘은 분명히 살아 계시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여기까지 하면 대부분의 환자는 웃음을 머금는다.
병마로 눈빛이 흐려지고, 살갗은 나무껍질처럼 찌들려 있는 삶의 마지막에도 한국 사람은 후회와 탄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무엇을 좋아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쉬운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어떤 형태의 병실을 좋아할까? 일본사람들은 좁은 1인실을 원하는 반면, 우리는 1인실보다는 넓은 다(多)인실을 좋아한다. 우리와는 같은 것이 많으면서 다르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무료로 쓰는 2인실이 있지만, 그곳보다는 환자와 보호자는 4인실을 더 좋아한다. 어울리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성격이 죽음에 와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죽을 때 후회도 별로 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도 같이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호스피스는 그 지역사회의 문화적인 측면에도 귀 기울여야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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