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30년] (18) 옷 벗은 감독들

"우승이 아니면 안된다" 삼성 '일등주의'에 희생

삼성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놨지만 승리 없이 4패로 주저앉으며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역대 삼성 감독들. 왼쪽부터 박영길, 정동진, 선동열 감독.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삼성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놨지만 승리 없이 4패로 주저앉으며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역대 삼성 감독들. 왼쪽부터 박영길, 정동진, 선동열 감독.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에 부풀었던 90년, 삼성 라이온즈는 어이없게도 LG에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4연패로 고개를 숙였다. 팬들의 실망은 컸고, 허탈하기는 선수단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타깃은 감독이었다. 정동진 감독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는 12월 해임통보를 받았다. 계약기간을 1년 더 남겨둔 때였다.

정 감독은 아마시절 국가대표 포수로 이름을 날렸고 84년 파란 사자 유니폼을 입은 후 수석코치로 김영덕, 박영길 감독을 보좌했다. 88년에는 삼성의 지휘봉을 잡아 그해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끌어올렸다. 90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지만 그간의 공로는 한국시리즈 4연패의 과오에 모두 묻히고 말았다.

그해 삼성은 여전히 막강한 화력을 보유했지만 확실한 에이스가 없었고 부실한 불펜 때문에 매 경기 불안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팀 에이스로 내세웠던 류명선은 입단 2년차였고, 89년 후반기부터 가담한 최동원은 이미 전성기를 한참 지난 뒤였다. 더욱이 89년까지 믿음직한 소방수로 활약했던 권영호가 은퇴하면서 뒷문 단속도 쉽지 않았다.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코치진 간 잠재된 불화는 5월 26일 대전구장서 정동진 감독과 미국인 투수코치 마티의 몸싸움으로 노출됐다. 사흘 뒤 이만수는 대구 해태전에서 관중이 던진 깡통을 되던져 일대 소란을 일으켰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경기장에 전투경찰이 투입돼 최루탄을 터뜨리는 불상사까지 일어나며 삼성은 안팎으로 내홍에 휩싸였다.

그나마 고졸 2년생 김상엽과 유격수 류중일(현 삼성 감독), 지명타자 박승호, 중간계투요원 정윤수가 대 분발하며 전반기를 2위로 마감한 삼성은 분위기를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후반기 8월 8일에는 이태일이 롯데를 상대로 프로통산 6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애초 약한 전력은 더는 버텨주지 못했다.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것도 그나마 다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최종문 야구해설가는 "정동진 감독은 원년 서영무 감독 이후 대구 출신 감독으로, 스타성만 강했지 뭉치지 못하는 모래알 같았던 선수단의 체질 개선에 앞장서며 팀워크를 다져갔다"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1990년 플레이오프에선 삼성의 숙원이었던 '해태 타도'를 이뤄낸 감독"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서 재계 라이벌 LG에 당한 완패는 결국 '우승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삼성의 원칙에 걸려 냉혹한 해임 통보로 이어졌다. 그는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준 뒤 야구를 더 배우겠다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전력 보강을 위해 모든 투자는 아끼지 않겠다. 단 이에 상응하는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삼성그룹과 구단 수뇌부의 엄명에 마지막 단추를 잘못 끼워 옷을 벗은 감독들은 전례가 있었다.

84년부터 86년까지 3년간 지휘봉을 잡은 삼성의 3대 김영덕 감독은 85년 통합우승을 일궈냈지만 84년과 86년 한국시리즈서 롯데(3승4패)와 해태(1승4패)에 패하며 박영길 감독과 교체됐다.

박영길 감독 역시 87년과 88년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물러났다. 87년 팀 타율 0.300과 팀 홈런 100개를 돌파하며 타격 부문서만 9개의 시즌 최고기록을 갈아치웠고 전후기 1위를 차지하며 박 감독은 공격야구의 1인자로 한동안 평가받았지만 마지막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87년 절친한 친구지간이던 해태 김응용 감독과 한국시리즈서 만났지만 4패로 완패했고, 88년 플레이오프서는 빙그레에 3패로 맥없이 뒷걸음질쳤다. 그해 삼성은 사상 초유의 그룹 비서실 감사를 받게 됐고, 계약기간이 1년 남은 박영길 감독은 전격 해임됐다.

90년대는 감독 교체가 더욱 빈번했다. 93년 삼성에 둥지를 튼 우용득 감독은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일구며 우승 희망을 키웠으나 이후 두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96년에는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에 97년 시즌 도중 퇴진했다. 그는 90년 한국시리즈서 LG사령탑으로 삼성 정동진 감독에게 경질의 사유를 제공했으나 그 역시 '성적으로 말하라'는 삼성의 방침에 철퇴를 맞고 말았다. 98년 부임한 서정환 감독은 두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으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고, 2000년 김용희 감독 역시 3위의 성적을 남기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지난해 말 계약기간을 4년이나 남겨두고 옷을 벗은 선동열 감독 역시 재임 6년 동안 5번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2005년, 2006년), 1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지만 '변화와 개혁'을 바란 삼성의 거센 파도를 넘지 못했다. 선동열 감독은 87년 박영길, 90년 정동진 감독과 함께 삼성의 한국시리즈서 4패를 기록한 3번째 감독이 됐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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