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청도(淸道)로 넘어가는 팔조령 고갯길, 길섶 감나무마다 빼곡히 매달린 감들이 가을볕에 붉게 익어간다. 일찍이 당(唐)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이란 학자는 감나무를 일러 '예절지수'(禮節之樹)라 일컬었다고 한다.
다섯 가지 덕목(德目)을 갖춘 나무라는 뜻이라는데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문(文)을 펼치는 데 기여함이 그 첫째 덕목이요, 나무 재질이 단단하여 화살의 촉으로 쓸 수 있으니 무(武)에 이바지함이 둘째 덕목이며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으니 충(忠)이 넘친다. 또한 홍시는 치아가 약한 노인들도 즐겨 먹을 수 있으니 효(孝)가 깃들어 있으며, 늦가을 찬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매달려 있으니 절개(節槪)가 있음이라고 칭송했다. 다소 억지스레 꿰맞춘 해석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자연 속의 사물 하나까지도 긍정적으로 살피는 열린 눈과, 작은 과일나무 하나에서도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 '인정'해 주는 상생의 겸허함을 엿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의 장점엔 눈감으면서 약점만 찾아가며 할퀴고 긍정적 상생보다는 부정적 독선으로 함께 무너지느라 감나무의 덕목 같은 건 살필 여유조차 없다. 가을은 그런 우리에게 미운 자의 약점조차 장점으로 보는 겸허한 눈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들판의 고개 숙인 벼에서 성숙이 겸허를 낳음을 깨달으라 하고, 바람 따라 몸을 눕히는 갈대에서 순응을 배우라고 한다. 가을바람을 거슬러 혼자 거꾸로 서는 갈대는 없다. 수많은 잎이 가을빛으로 물들 때 저 혼자만 푸른 빛깔로 되돌아가는 거역 또한 없다. 그것이 자연이 누리고 보여주는 겸허함이고 순리다. 익었으면서도 숙인 벼 이삭과 원하지 않은 바람에도 불평 없이 눕는 가을 갈대를 보며 우리는 감나무에서 덕목을 다섯 가지나 찾아낸 단성식의 눈과 마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장점이었던 백의(白衣)의 겸허함을 너무 많이 잃었다. 남의 장점을 보는 눈도 흐려졌다. 종족 번식을 위해 가을 열매를 터뜨리고, 내던지는 자기희생의 인내심도 엷어져 왔다. 삶이 어려울수록 자연의 순리에 다가가 살아야 길이 열릴 텐데 거꾸로 거스르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경북을 돌아봐도 그렇다. 어렵다, 어렵다, 말은 하면서 아직도 끼리끼리의 장점을 찾아 주고, 인정해 주고, 상생을 공유하려는 도시의 활기는 부족하다. 세계육상경기대회 때 반짝 보여준 시'도민의 저력은 경상도 기질 DNA 속에 잠재된 수많은 덕목 중 한 가지를 드러내 보여 준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타 지역민보다 그런 좋은 덕목들을 인자(因子)로 품고 있다. 다만 그런 장점은 덮어두고 지역의 단점만을 키워내 오느라 꼴통도시의 이미지를 뿌려왔다. 대구스타디움을 지을 때만 해도 일부에서 매년 30억원 내외의 관리운영비 적자 예상을 꼬집으며 건설을 강행한 전임 시장(문희갑 시장)을 부정적으로 헐뜯었다. 그러나 스타디움 인프라 덕분에 월드컵을 열었고 뒤이어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해내 750억 원의 순수익까지 남겼다. 그 돈이면 부정적 비판론자들 주장대로 매년 30억 원 운영비 적자가 난다 해도 긍정적으로 보면 25년은 끄떡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정적 논리에 말려 스타디움을 안 지었더라면 이번 세계육상대회는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앞서가는 추진력을 '핏대'로 부정하는 건 감나무에서 덕목을 찾아내는 대신 '감이 떫다'고 떠드는 것과도 같다. 우리 지역의 한 가지 사례만 돌아봐도 그렇단 얘기다. 감나무를 보고 다섯 가지의 덕목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열린 눈(眼)은 이제 500만 시'도민뿐이 아니라 5천만 국민이 다 함께 떠야 한다. 그런 긍정적 눈만 있으면 감나무 한 그루에서도 배우고 깨우칠 거리를 찾을 수 있는데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야 뭘 못 찾아내겠는가.
광우병을 부정적으로 비판한 지 3년 만에 미국 쇠고기 6만t(작년 대비 3배, 세계 1위)을 먹고 있는 모순, 10만 명의 학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도 미국을 미워하게 교육시키는 교사가 수만 명이 넘는 모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종북 세력은 넘쳐나는데도 막상 북한 가서 살겠다는 자는 한 명도 없는 모순. 그런 모순과 정치사회적 갈등의 본질도 감나무에서조차 덕목을 찾아낼 줄 아는 긍정적 눈과 남의 장점을 찾고 인정해 주려는 마음이 없어 빚어지는 것이다.
이 가을엔 감나무 밭이라도 거닐며 우리 모두의 눈과 마음을 단성식의 마음처럼 맑게 닦아 보자.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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