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봉호 화재' 승객 구조 일등공신 박상환 씨

승객들 어둠 속 우왕좌왕…"침착해야 삽니다" 큰소리 외쳐

해군 출신의 박상환 씨는 지난달 발생한 제주행
해군 출신의 박상환 씨는 지난달 발생한 제주행 '설봉호' 선박 화재 때 기지를 발휘 , 승객들을 구조하는데 기여했다.

해군 출신의 40대 대구 시민이 지난달 불이 났던 4천t급 여객선 설봉호에서 승객과 승무원 130명을 무사히 구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인공은 박상환(49·대구 서구 내당동·의류업) 씨. 그는 지난달 6일 오전 1시쯤 부산항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설봉호 일등석 침실에서 아내 정외자(47) 씨와 함께 자고 있었다.

박 씨는 갑자기 바깥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고 잠에서 깼다. "밤이면 사방이 어두워야 하잖아요. 침실에 큰 창이 있었는데 창밖으로 '번쩍'하고 불길이 치솟고 스피커에서 지지직대는 소리가 나길래 급히 일어났습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화재가 발생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결에 갑판으로 뛰쳐나온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때 박 씨가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갖고 있던 호루라기를 크게 불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침착하게 행동하면 모두 살 수 있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후 한 승객이 배에 있던 구명정을 내려 바다에 띄웠고 박 씨는 구명 사다리를 풀어 구명정에 연결시켰다. 하지만 승객들은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암흑 속에서 흔들리는 사다리를 밟기 두려워했다. 구명정에서 배 갑판까지 높이가 아파트 4층 정도될 만큼 높았기 때문. 그때 박 씨가 나섰다."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사람들이 안심할 것 같아서 첫 번째 구명정에 타서 조명탄을 터뜨렸습니다."

그렇게 승객들이 안심하고 한두 명씩 구명정에 타자 그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배로 올라갔다. 당시 임산부와 서너 살짜리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서였다. 승객 대부분이 배에서 내리자 순식간에 불길은 배 전체로 번졌고 해경이 도착해 130명을 모두 구조했다.

박 씨가 위기에서 승객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해군 복무 경력 때문에 가능했다. 1983년 해군에 입대해 1986년까지 33개월 복무한 그는 한국형 구축함인 서울함을 타며 배 구조를 익히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수시로 받았다. 또 박 씨 부부가 매주 배를 타고 독도와 흑산도 등 전국 섬으로 여행 다닌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박 씨는 "해군 출신인데다가 매주 섬 여행을 다니니 바다가 친숙하게 느껴져 두려움이 들지 않는다"며 "지난달 제주도 여행 때 비행기 대신 배를 선택한 것도 배와 바다가 좋아서였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박수를 다른 승객들의 공으로 돌렸다. 박 씨는 "승객들 중에 뱃일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이 구명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을 안내했다. 또 30, 40대 젊은 승객들이 많아서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킨 덕분"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앞으로도 배를 타고 주말마다 여행하는 인생을 즐길 생각이다."다음에 제주도 갈 때 또 배 타고 가야죠. 제가 탄 배에 두 번 불 나겠습니까. 허허허…."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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