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최고 프로그래머가 될 겁니다. 취업도 돼 꿈만 같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구직업능력개발원 2층 컴퓨터 프로그래밍반. 바짝 마른 체격에 팔과 다리를 제대로 못 펴고 몸조차 가누기 힘든 중증장애인 김민수(25) 씨.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는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을 겨우 움직이는 어눌한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앉아있기도 힘에 부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다음 달이면 대구의 한 기계제작 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취업할 예정이기 때문. 지난해 5월 장애인고용공단과 인연을 맺어 16개월간 교육을 받았고, 현재 취업을 위한 프로그밍 맞춤 훈련을 받고 있다.
"내게도 이런 인생이 있다니 너무 기뻐요. 장애는 단지 장애일 뿐임을 새삼 느낍니다."
그의 병명은 이름조차 생소한 피부근염. 근육과 관절에 석회질이 생기는 병으로 희귀질환에 속한다. 딱딱해진 석회질 때문에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근육도 약해진다. 성인이 걸리면 대부분 사망할만큼 무서운 병이다.
3세 때부터 그는 병에 시달렸다. 처음엔 병명도 몰라 병원을 전전했다. 4년 가까이 지나서야 피부근염 진단을 받았다. 힐체어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남의 시선을 못이겨 6학년 2학기에 대구보건학교로 전학해 중'고교 과정을 마쳤고 대구보건대에서 안경광학을 전공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7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근육이 자꾸 오그라들어 다리와 팔을 펴줘야하기 때문이죠. 그때는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쯤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컴퓨터에 소질이 있었다. 중'고교 때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땄다. 게임실력도 뛰어나 스타크래프트 대구대표로 뽑혀 전국대회에 출전했고, 카트라이더 대구대회에서는 2등을 했다. 컴퓨터 조립대회 우승도 했고, 장애인스포츠인 보치아 경기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다.
청소년 시절엔 문학소년이었다. 장애인 백일장 소설부문 1등, 시 부문도 여러 차례 입상했다. 이런 활동으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3차례나 받았다.
"공단에서 교육훈련을 받으며 워드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한글 타자는 1분에 300타, 영문 타자는 200타 정도 칩니다." 교육훈련 중에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도 많다. 채팅, MP3 플레이어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장기 및 스네이크 게임 프로그램도 만드는 중이다. 프로그램 완성을 위해 집에서 밤을 새운 적도 많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올 초 삼성에 사무자동화 분야 장애인시험에 응시해 1차는 통과했지만 아쉽게 면접에서 떨어졌다. 번번이 낙방의 쓴맛을 봤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초교 5년 때부터 컴퓨터 통신과 게임을 하다 여자 친구도 사귀었죠. 비장애인이지만 제 마음을 잘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고교 3학년 때 뜻하지 않게 이별을 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중증장애를 뛰어넘어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언제나 살갑게 지켜준 어머니(52)였다. 달성군 서재에서 달서구 용산동 공단까지 매일 오전 9시 아들을 태워 데려주고 오후 5시면 어김없이 데리려 온다. 공단 관계자는 "언제나 밝은 얼굴을 잃지 않고 아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의 손에는 항상 '효자손'이 있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는 먼 물건을 끌어당기거나 떨어진 물건을 집어올릴 때 효자손이 보조손 역할을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효자손으로 누른다.
"지금은 병의 진행이 중단됐어요. 하지만 하루에 30분 정도는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근육이 약해지고 몸이 비틀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죠."
장애인공단 신인수 교사는 "매사에 긍정적인 민수 씨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며 "그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장애가 가벼운 다른 원생들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비록 몸은 마음껏 움직일 수 없지만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가슴이 벅차게 기쁩니다." 민수 씨는 취업 소식을 전해듣고 난생처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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