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내 준 민주당은 이래저래 체면을 구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제1 야당의 정치 프로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햇병아리' 신인에게 밀려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손학규 대표의 대표직 사퇴 선언도 하루 만에 번복됐다. 당 대표가 책임을 져야 당이 변화하고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던 손 대표는 만장일치로 결의된 의원총회의 사퇴 철회 요구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손 대표는 복잡하게 얽힌 역학 구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인했지만, 야당 대표가 손바닥 뒤집듯 해서야 되느냐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야권 후보 경선이 치러진 그날 국회 법사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는 감사가 중단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가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때문이었다. 문제의 메시지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였다. 박 의원은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이 특보를 해임하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 특보는 문장의 첫 머리에 '내가'라는 주어가 생략되면서 생긴 오해라며 되레 박 의원의 공개 행위를 힐난했다.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만나 온 가까운 사이인데다 직접 만나 한 설명이 불신받고 무시당한 정치 무상에 문자를 보냈다고 해명했다.
박 의원이 발끈한 것이나 이 특보의 해명은 해프닝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두 분의 행동은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박 의원은 공과 사는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당적이 다르다고 사적 영역까지 폭로하는 행위는 유쾌한 장면이 아니다. 이 특보의 해명은 말장난의 인상을 준다. 이 특보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글쓰기로 밥벌이를 한 분이다. 불명확한 문장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글을 쓰지 않는 자세가 몸에 밴 분이다. 그런 분이 누가 봐도 상대방을 욕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을 두고 주어가 빠졌다고 해명하는 것은 석연치 않다. 두 분의 언쟁은 자기중심적인 우리 정치권의 한 단면이다.
오세훈 전 시울시장의 사퇴 이후 여야를 강타한 이른바 안철수 바람과 그 후폭풍으로 야당이 시민운동가에게 후보 자리를 내 준 결과는 정치권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안철수 바람은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식상함과 혐오감이 원인일 수 있다. 국민들의 눈 밖에 난 정치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남들보다 똑똑하고 세상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 국민들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수십 년째 이어 온다.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철부지 아이들이나 시정잡배보다 나은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비웃는다.
정치인 개개인은 대부분 우수한 분들이다. 검증도 그런대로 됐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분들이다. 똑똑하고 몸가짐도 비난받을 짓을 적게 한 분들이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여의도는 국민에게 존경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정치권력의 생리 때문인지 사적 욕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민들에게 감동보다는 짜증과 실망을 안겨 준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국민들의 요구와 생각도 제각각 다르다. 내 생각과 남의 의견이 부딪치면 이해와 포용 대신 먼저 비난이 앞선다. 그래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 시장이 돼도 국민들의 비난을 피할 도리가 없다. 한쪽에서는 박수를 받더라도 반대편의 불만과 비판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국민들은 잘못 찍었다고 손가락을 자르겠다지만 그분들은 국민들의 아우성에 못해 먹겠다고 한다. 갈등과 다툼을 줄이려면 양보와 존중이 필요하지만 권력의 현장이나 유권자의 모습 어디서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을 통해 "한나라당은 교조적인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던 영국 보수당의 지혜와 유연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연함을 강조한 정 의원의 지적은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유권자들도 귀담아들을 충고다. 우리 정치의 변화와 혁신은 일차적으로 정치권의 몫이지만 국민들의 역할도 적잖다. 국민들의 시선이 이젠 부드러워져야 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기로에 정치를 몰아넣지 않아야 한다. 양자택일의 강요나 내 편 네 편의 편 가르기는 자기중심적인 정치판에 소통의 바람을 불어 넣지 못한다.
徐泳瓘(논설주간)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