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보세. 해 길고 잔풍(殘風)하니 오늘 놀이 잘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罟)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磐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 중 일부는 천렵(川獵)의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천렵의 풍습은 그림으로도 남아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리는 긍재 김득신의 '천렵도'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짬을 내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질박하게 담겨 있다.
등장인물들의 해학적인 표정과 순박한 동작이 무척 사실적이다. 이른바 망중한(忙中閑)이다. 천렵은 우리 조상들이 삼삼오오 냇가에 모여 고기를 잡으며 한나절을 보내던 오랜 놀이문화이다.
봄이나 가을에도 즐겼지만, 특히 여름철 삼복(三伏) 더위 때가 제격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벗이나 이웃끼리 맑은 개울이나 강에서 멱을 감으며 고기를 잡았다. 은모래와 잔자갈이 고운 강어귀나 여울에는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동사리, 퉁가리, 꺽지, 피라미, 송사리,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버들치, 갈겨니, 붕어, 메기, 뱀장어 등등. 고기 잡는 방법도 다양했다. 어레미와 반두를 들고 도랑을 뒤졌으며, 깊은 물에는 사발무지를 놓았다. 솜씨 좋은 사람은 맨손으로도 돌 밑이나 풀숲의 고기를 잡아 올렸다.
그렇게 잡은 고기로 솥을 걸고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술 추렴을 해서 막걸리나 소주잔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다. 천렵은 고기만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힘겨운 일상을 달래며 인정을 나누는 데 그 본질이 있었다.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안동 반변천 여울에서 전통 천렵 풍속을 그대로 재현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말인 8일까지 열리는 이 천렵 시연은 '낙동강 모래여울의 왕자'로 불리는 누치를 명주그물 후리기로 잡아내는 것이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반두를 이용해 누치잡이에 동참할 수 있으며 강변에 대형 가마솥을 걸어두고 갓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나눠준다고 한다. 천렵의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의 마음이 고향의 강 언저리를 서성이고도 남을 얘기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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