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창녕 화왕산

6만평 수놓은 대평원 하얀 판타지 억새 군무에 산꾼들은 감성모드

계절은 기울어진 지축(地軸)을 따라온다. 어느새 가을. 나뭇가지마다 색색의 잎새들. 한로(寒露) 냉기에 수액은 부쩍 말라 이젠 중력(重力)이 버겁다. 이제 힘든 짐 벗어 놓고 대지로의 귀환을 준비한다.

산모퉁이 돌아서면 하얀 억새밭. 흰 수술이 한 뼘이나 제 키를 키웠다. 이제껏 개화를 방해했던 외피(外皮)를 밀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내민다. 한걸음 늦은 달빛이 하얀 수술을 쓸면 중력을 얻은 꽃술이 하얀 물결로 일렁인다. 푸른 잎줄기 군무 따라 서걱서걱 청아한 공명, 게으른 산객(山客)은 갈 길을 잊고 가을교향곡 속으로 빠져든다.

◆물 기운 충만한 도시, 화왕산 화기로 수기(水氣) 눌러=창녕은 물이 넉넉한 도시다.'메기가 하품을 해도 물이 넘친다'는 우포늪이 있고 도시 서쪽으로는 513㎞ 낙동강이 지난다. 강과 늪을 끼고 있다는 이점은 뒤집으면 홍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핸디캡이기도 하다.

물에 대한 공포와 외경은 풍수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가 '불뫼' 화왕산(火旺山)이다. 상극인 화기(火氣)를 내세워 수기(水氣)를 누른다는 비보(裨補)풍수인 셈이다. 화왕산에 큰불이 나야 다음해 풍년이 들고 고을이 평안해진다는 속설이 나오게 되었으니 '화왕산 억새제'는 이런 풍속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창녕은 큰 강의 중류에 위치한 지형 덕에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너른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삼한시대에는 불사국(不斯國)이, 가야시대에는 비화가야(非火伽耶)의 근거지가 되었다. 화왕산에 구축된 산성은 가야시대부터 전략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곽재우가 왜군과 맞서 싸운 호국의 산성이었다.

억새와 단풍은 모두 가을의 전령이자 계절의 진객. 하나는 화려한 색감으로 하나는 무채색의 서정으로 나름의 개성대로 계절을 알린다. 가을 바람에 실려 온 억새의 화신(花信)을 접하고 창녕 화왕산으로 향했다. 화왕산으로 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자하골~도성암~환장고개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일부 준족의 산꾼들은 옆에 나란히 선 관룡산을 연계한 15㎞ 코스를 타기도 한다. 어느 코스를 타든지 정상부 억새능선 일주는 필수코스다. 초가을의 서정이 20만㎡(6만평) 평원에 활짝 펼쳐지기 때문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솔숲 공기는 쾌적하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는 정상을 앞두고 심술을 부린다. 이름하여 환장고개. 별명대로 경사 길은 무서운 강도로 호흡을 압박해 온다. 정말로 장(腸)이 뒤집힐 정도. 그러나 고개를 넘자마자 펼쳐지는 대평원의 장관은 '환장'(換腸)을 '환장'(歡腸)으로 대치시킨다.

◆20만㎡ 대평원 억새 군무에 산꾼들은 감성모드=내친김에 정상으로 내달린다. 높이와 조망은 정비례. 최고의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다.

정상석과 눈을 맞추고 가빠진 숨을 고르며 평원을 내려 본다. 아! 광평추파(廣坪秋波). 햇살을 머금은 억새가 은빛 나래를 펴고 바람을 따라 물결친다. 밀려드는 감동, 산객들은 감성모드에 젖어든다.

달라붙는 시상(詩想)을 털어내며 일행은 산성 일주에 나선다. 서문(西門)광장에서는 관광객들이 묵채,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억새밭에서의 오찬, 산상에서의 커피 한잔. 황후의 식사가 이보다 멋질까.

여인의 가르마 같은 억새 길을 헤치며 배바우를 향해 오른다. 배바우는 지난 2009년 참사 때 비극의 현장이다. 당시 기상대는 '52년 만에 가장 둥근 달을 볼 수 있다'고 예보했고 솔깃한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배바우는 정상 쪽으로 번져가는 불길을 렌즈에 잡기에 좋은 포인트여서 방화벽을 따라 대규모 포토라인이 형성돼 있었다.

갑자기 돌풍이 닥치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바위 주변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등산객들은 불길을 피할 새도 없이 벼랑으로 추락하거나 현장에서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 자리, 현장은 완전히 평온을 되찾았다. 그때의 참사는 깨끗히 잊혀진 듯 지금은 등산객들의 수다만이 계곡을 울린다. 바위 전경 몇 컷을 사진에 담고 동문으로 향한다. 길은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구릉에는 각(角)을 달리한 억새물결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앙부엔 유적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사실 학계의 여러 추측과 달리 산성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기원을 가야시대로 추측하는 것도 창녕척경비문을 근거로 한 하나의 가설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최근 다양한 주거 흔적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풍부한 생활용수에 3면은 절벽, 천혜의 요새=산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생거(生居)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분지에는 평원이 조성돼 농사가 가능하고 곳곳에 연못과 샘이 있다. 천혜 입지에 주거요건까지 완비되었으니 나발론이나 양산박 못지않은 요새기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창녕 조씨(昌寧 曺氏) 득성지를 지나 길은 동문으로 이어진다. 석성의 위용은 동문 쪽이 가장 우람하다. 아마도 경사가 완만한 옥천이나 관룡산에서의 침투에 대비한 듯하다. 동문을 빠져나와 잠시 허준세트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허준'외 '대장금''왕초''상도'가 촬영되었다. 벌써 5, 6년 전의 일, 이제 수명을 다한 목재들이 하나씩 허물어 내리는 중이다. 이런 허술한 공간이 명 드라마의 산실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동문으로 돌아와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걷는다. 성곽은 2, 3명 교행이 가능할 정도로 대규모다. 이런 성채라면 1대 100의 전력열세도 충분히 극복될 것 같은 위용이다.

북쪽 끝단에서 성은 끝난다. 이제 산은 평야의 조망을 열어 보인다. 억새 그늘을 비껴서 고암면 쪽 들녘이 조망을 펼친다. 반듯하게 펼쳐진 들판에서 목가의 풍경이 한껏 묻어난다.

10리길 능선을 돌아 다시 정상에 섰다. 어느덧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억새의 꽃술 에도 석양이 깃들었다. 700리 길을 달려 온 저 멀리 낙동강의 은빛물결도 노을을 머금었다. 들판의 바쁠 일 없는 백로 한 마리 길게 날면 억새 잎 서걱대며 짧은 해를 전송한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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