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흙속의 진주' 미래 성장산업…유전자원 확보 '소리 없는 전쟁'

한국 유전자원 눈뜨기 전 日 美 한반도 씨앗 싹쓸이

경북농업기술원 구미화훼시험장의 김현석 연구사가 칠곡군 왜관읍의 한 농가를 찾아 자신이 개발한 시험재배 신품종
경북농업기술원 구미화훼시험장의 김현석 연구사가 칠곡군 왜관읍의 한 농가를 찾아 자신이 개발한 시험재배 신품종 '브라이트엔디'(Bright ND)의 개화상태를 살피고 있다. 사진 서광호기자

채소분야 민간 육종가 1호인 최응규(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장충종묘 대표. 그가 개발한 호박 신품종 '장춘토좌'는 유럽의 쪄먹는 호박 품종인 '핫바드'와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던 '흑국좌' 품종을 교배해 만들었다.

그는 "신품종을 육성하기 위해선 부계와 모계 각각 원료종자가 있어야 한다. 보통 외국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거나 국산 토종 품종을 쓴다"며 "종자가 없다면 신품종 개발도 없다. 우리의 종자를 지키고 외국의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 종자산업 성장의 열쇠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종자주권 경쟁 중

종자산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종자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세계 각국은 종자 등 유전자원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종자 선점을 통한 종자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국립연구자원센터를 통해 생명공학연구에 필요한 전 세계의 유전자원을 확보하는 데 2010년 1조4천억원을 투자했다. EU(유럽연합)도 2006년 제7차 연구개발 기본계획(FP7)의 4대 중점분야 중 하나로 '유전자원 인프라 확충과 공동 활용'을 포함했다. 일본은 유전자원 확보와 활용을 목표로 '국가생명자원사업'(NBRP)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추진해오고 있다. 중국도 1983년'중약재자원보호법'을 공포해 무분별한 채취로부터 야생자원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종자들은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전에 외국으로 유출됐다. 1920년대 도쿄대 나카이 교수는 총독부에서 2개 중대 병력을 지원받아 전국을 돌며 식물유전자원을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미국 수목원 관계자들도 1984년부터 5년간 세 차례에 걸쳐 한반도 전역의 희귀식물을 채집해 유출했다. 미국은 지난 100여 년간 한반도에서 수집한 4천 종 이상의 콩 종자를 개량해 현재 콩 수출 세계 1위 국가로 도약했다. 현재 미국 일리노이대학에는 우리나라 재래종 5천700여 종이 보관돼 있다.

보호 장치 없이 유출된 국내 유전자원은 외국에서 품종 개발돼 이용되고 있다. 북한산(北漢山)의 정향나무를 소재로 미국에서 육성한 '미스킴 라일락'은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원예학회가 주관한 콘테스트 수상작 중 한국의 동백나무로 추정되는 '코리아 파이어'가 포함되기도 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개발한 품종을 외국기업에 넘겨주기도 했다. 매운 고추로 유명한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가 매운 태국산 고추와 제주산 고추를 교배해 개발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로 중앙종묘가 다국적 기업인 세미니스(현재 몬산토, 미국)에 합병되면서 소유권이 외국 기업으로 넘어갔다.

◆종자 지키고 확보하려는 노력

이에 한국 정부는 국외로 유출된 토종 유전자원을 돌려받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07년 구한말에 미국으로 유출되었던 목화, 마늘, 부추, 귀리, 들깨 등 토종자원 1천679점을 반환받았다. 2008년에는 일본으로 유출됐던 32개 작물, 1천546점을 돌려받았다.

농촌진흥청은 국내 유전자원 보존과 외국의 유전자원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2006년 리히터 규모 7 수준의 내진설계와 입출고를 로봇이 담당하는 첨단 종자 저장시설을 갖춘 저장 시설을 신축했다. 연구소, 대학 등에서 보유하고 있던 유전자원을 통합하고 전국 농촌지도소와 함께 토종자원 5천171점을 모았고 미국 농업연구청(ARS)으로부터 귀리종자 7천618점을 도입하는 등 여러 국제기구와 연대해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기환 박사는 "종자는 농업뿐만 아니라 기능성 식품, 각종 치료제 등 의학과 바이오산업의 근간으로서 미래 성장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종자유출은 국부 유출이다"며 "앞으로 토종 유전자원을 지키고 외국의 유수한 종자를 수집해 종자주권을 강화하면서 종자산업의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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