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클래식 음악의 시원이자 메카였던 음악감상실 '녹향(綠香)'(대구시 중구 화전동)의 이창수 대표가 6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0세. 유족으로 부인 이정숙 씨를 비롯해 장남 정남, 차남 정호, 삼남 정춘, 사남 정태, 장녀 정희, 차녀 화수 씨가 있다.
고인은 1946년 10월 국내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을 대구에서 열었다. 녹향은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 온 예술가들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시인 김요섭을 비롯해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 유치환, 신동집, 양명문, 최정희 등 대구로 몰려든 당대 최고의 문인'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예술을 논하고 음악을 감상했다. 피란민들이 서울로 돌아간 뒤인 1950년대 중반부터는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이 녹향을 지켰다. 당시 음악 감상실 녹향과 주변 일대는 음악과 낭만 그 자체였다.
1970년대 북성로와 향촌동 시대가 저물면서 녹향의 화려한 날도 저물어갔다. 1980년대 다소 살아날 기미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상권이 이동하고, 전반적인 도심 분위기가 변하면서 어려움이 지속됐다.
원로 소설가 윤장근 씨는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향촌동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위축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향촌동과 북성로 등 당시 대구 번화가의 분위기와 색채가 변하기 시작했다. 녹향의 퇴색은 시대와 궤를 같이 했다"고 회고한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이어졌지만 이창수 대표는 65년 동안 녹향을 지켰다. 이창수 대표의 이 외로운 '녹향 지키기'를 지켜보던 대구시민들 사이에서 '녹향 지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 즈음부터는 일부러라도 찾아가자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들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2009년 헌정 음악회 '마에스트로, 녹향으로 가다'로 녹향은 전국적으로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이 음악회에는 곽승 대구시향 지휘자를 비롯해 지역의 대표적인 관현악 지휘자들이 대거 참가했으며 당시 모든 출연자와 스태프가 노개런티로 참여해 녹향의 의미를 되새겼다. 일반인들의 관심도 뜨거워 대구는 물론이고 서울,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음악팬들이 찾아왔으며, 5일간 열린 이 음악회는 100% 매진 기록을 세웠다. 당시 티켓 수익금 전액은 녹향 재기를 위해 전달됐다.
20대에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고 녹향을 열었던 이창수 대표는 평생 클래식 외길인생을 걸었다. 지병에도 불구하고, 매일 버스를 타고 녹향으로 출근했던 그는 "녹향을 지키다가 떠나는 것이 소원"이라던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녹향을 지켰다. 장례식장은 대구전문장례식장(대구시 동구 용계동)이며, 발인은 8일 오전, 장지는 대구중부교회묘지(대구시 북구 관음동)다. 010-4772-1074.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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