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요리하는 남자

유교는 각자의 위치를 익히고 배우며, 위치에 따른 책임과 역할을 정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문화는 능력을 위주로 책임과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유교 질서는 상하 역할을 규정하는 수직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문화는 수평적 질서를 지키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 질서를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근대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문명은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질서이다. 즉 한국인은 현재 이 두 서로 다른 체계가 만나는 교차점에 살고 있다. 그리고 상호 다른 두 철학을 조화시키며, 이를 재편집해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위치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층 더 슬퍼지는 사람들은 유교 사회에서 상층에 분류되었던 사람들일 수 있다. 임금, 어른, 스승, 남자, 형님과 같은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그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들에게 더 특별히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직 감정적으로 각각 신하나 어린이, 제자, 여자, 동생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기존의 개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중에 기러기 아빠가 있다. 그는 혼자 몇 년을 살다 보니, 어느 날 영양실조가 왔단다. 그래서 하루는 큰 결심을 하고 음식을 해먹으려고 장을 보러 갔었다.

그러나 자신이 살 수 있는 것은 라면과 두부, 달걀 정도였고 다른 것은 거저 준다 해도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날 요리책을 샀다. 그리고 책을 보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리를 해보고 맛있으면 동료들을 불러서 같이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자 생감자를 보아도 그 맛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어느 날, 음식이라면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생활이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먹는 것을 스스로 할 줄 알게 되자 편안함이 오더란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요리서와 가까웠던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이 좀 더 편하게 요리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는 1459년 무렵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전순의는 의관이었는데, 의관 노중례와 함께 한의학의 3대 저술 중의 하나인 '의방유취'를 공동 편찬했으며 세조의 명에 의해 '식료찬요'(食療纂要)라는 의서를 지었다. 즉 그는 의사이며 식품 연구자였다.

또한 김유 부자는 '수운잡방'(1540년)을 썼고 허균도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을 집필했다.

한류를 일으킨 연속극 대장금에서와는 달리, 궁중의 요리도 대부분 남자들이 담당했다. 이 때문에 17세기 후반기에 나온 '음식디미방'(1670년경)은 여성이 쓴 요리서로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하긴, 장 보는 일도 전통적으로 남성이 했었기 때문에 장에 가면 얼레빗을 사다 달라는 아낙의 응석도 가능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그런 풍속이 변해버렸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남학생들도 학교에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운다. 더욱이 현재는 식재료를 거의 만들어 마지막 조리만 하면 되도록 파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남성은 음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곧 전설이 될지 모른다.

시대가 변하다 보면 어느 기간은 특별한 계층에 더욱 힘든 때가 있다. 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남자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입장은 이 특별한 경우에 속하게 되었다. 사회는 특수한 시기를 겪는 이들이 시대의 산물을 감당하는 데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지 모른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줄 아는 것은 자유를 찾는 일이다. 이제 민주라는 이름으로 기본적인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하나일 뿐이다. 요리하는 남자에게는 또 다른 자유가 있음이 틀림없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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