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방탄조끼, 레이더, 원자폭탄, 생물학 무기 등 신기술 개발이 전쟁과 역사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책은 고대 중국과 시칠리아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현대 뉴욕의 합성수지 연구소까지 새로운 기술이나 신무기를 개발한 25인을 통해 신기술이 탄생한 배경과 그 영향을 추적한다.
신기술은 인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대량살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전쟁수행에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생명을 구하려는 숭고함, 애국심으로 뭉치기도 했고, 때로는 비도덕적이고, 잇속을 차리려고 연구에 임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기가 발명한 대량파괴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했고, 어떤 이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또 어떤 이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면 국가나 이유를 가리지 않고 충실히 임하기도 했다.
리처드 개틀링은 1분에 400발을 쏠 수 있는 '개틀링 기관총'을 발명한 뒤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사되어 한 사람이 백 사람 몫의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대군은 필요 없게 될 테고 그럼 전투와 그에 따른 질병 역시 크게 줄어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네."
개틀링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그의 기관총은 인류를 전쟁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했고, 오직 살상효과를 높이는 결과만 냈다. 이에 반해 다이너마이트는 도시를 산산조각내기도 했지만,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다.
군사적인 이유로 발명됐지만 무기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 발명품도 있었다.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물을 깡통에 넣어 신선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고안한 프랑스 요리사다. 그의 발명품은 행군 중인 군대에 도움이 됐지만, 장거리 여행객, 장시간 항해하는 배의 승무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러시아 출신의 이고르 시코르스키는 자신이 발명한 헬리콥터가 군대를 전장으로 이송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는데 유용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그의 발명품은 첨단무기를 장착한 전투헬리콥터로 변모했고, 그는 이런 사실에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말년에 그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구조작업 상황을 보도하는 신문을 스크랩하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고 한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죽은 뒤 대량 살상무기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으로만 기억되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절치부심한 끝에 화학, 물리학, 의학, 문학, 세계평화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한 개인에게 해마다 상을 수여함으로써 이미지 개선작업에 돌입했다. 노벨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일의 화학자이자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프리츠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가스를 개발해 연합군에 살포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여겼으며, 연합군 진지 쪽으로 밀려가는 최초의 독가스 구름사진을 액자에 끼워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 역시 뛰어난 화학자였던 그의 아내 클라라 하버는 남편과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소중해 마지않던 과학을 남편이 악용한 사실에 심한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학자로 나치당원이었던 베르너 폰 브라운은 V-2 로켓 실험당시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민간인들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고, 수천 명을 희생시켰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전범으로 체포되는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 미사일 개발에 협력했고, 미국의 우주계획을 위한 로켓까지 만들었다. 폰 브라운과 함께 연구했던 미국의 과학자들은 그의 천재성에 탄복했으면, 인간적으로 좋아하기도 했다.
책은 신무기를 개발한 25인의 과학자를 통해 과학과 과학자의 잠재력이 양극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과학은 오직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고,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철학인 셈이다. 432쪽, 1만9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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