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에 생활의 달인 코너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생소하거나 때로는 미천하며 대중이 잘 모르는 일을 하면서도 그 분야에서 달인이 된 이들이 소개된다. 남대문 시장을 오르내리는 짐꾼에서부터, 홍두깨 속까지 뚫어서 특수 면발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칼국수 주인까지 다종다양한 달인들이 소개된다. 달인들의 공통점은 창조성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 너머까지 생각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그래서 '달인'에 오른 이들은 요샛말로 하면 지식근로자 내지 창조근로자이다. 그러나 창조된 지식이 사회로 환원되지 못하면 그냥 달인의 삶과 함께 땅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공유와 배려 사회
21세기는 달라야 한다. 달인이 창조해낸 지식을 공유하고 전수하며 재창조를 통한 사회적 자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런 인식이 부족하였기에 고려청자의 비법도 표준화되지 못한 채 끝이 났고, 시어머니의 요리비법은 며느리에게도 전수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자본주의 4.0시대로 접어든 오늘날의 가치는 어렵사리 창조된 지식이나 상상력을 나만 끌어안지 않고, 공유하고, 환원하려는 큰 흐름이 있다. 바로 인적 물적 자본에 관계망을 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기부정신을 더하여 소수의 인재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보다 더한 가치를 지닌 지식공유와 나눔으로 사회통합을 이루고 삶의 질을 높여가려는 시대정신이 있다. 이 시대정신은 배우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튼튼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의 생성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사회 조성이 필수이다.
◇자본주의 4.0의 핵심 평생교육
OECD UNESCO 월드뱅크와 같은 세계 기구가 평생학습을 강조하고 평생학습 확산을 위한 10년 프로젝트를 가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연합이 초국가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레오나드로 다빈치' '에라스무스' '그룬드비' '소크라테스' 등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기도 마찬가지이다. 바닥난 재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영국 또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통합이 실현되는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를 만들기 위해 성인학습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 공민관에 모여서 단순하게 배우고 학습하던 구각을 탈피, 이제는 주민역량을 개발하고 획득한 지식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생애학습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주민자치센터나 마을회관 등에서 그냥 모여서 배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나눔의 정신을 심는 평생학습으로 승화시켜 행복한 삶은 물론 지역 일에 앞장서는 주민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뛰어넘어 '지역공동체'가 필요하고, 공급자 위주의 평생교육에서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평생학습사회로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생학습은 인류의 마지막 보물
대구시에서 평생학습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기초지자체 달서구가 올해 평생학습 예산으로 4억원을 배정한 데 반해 광역지자체 대구시는 1억5천900만원의 예산만 책정했다. 시민 90% 이상이 원하는 평생학습에 대한 광역망을 만들고, 온-오프 학습상담과 정보망을 구축하고 산재해 있는 각 평생교육센터의 기능을 조절하고 미션을 부여하여 자본주의 4.0시대에 맞는 개방된 사고와 변화를 받아들이는 역량을 대구시민이 갖춰가도록 하는 '큰틀 짜기'에 무관심하다. '인류가 남긴 마지막 보물'이라고 유네스코가 평생학습을 평가하고, 정부가 헌법에 평생교육을 명시해도 대구광역시는 늦다. 그래서 대구시는 '평생학습 후진도시'로 낙인찍혀 있다. 지역사회교육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에서 태동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교육문화도시 대구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학습을 통해서 사람이 바뀌고, 지역이 달라지는 과정은 시간을 요한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그렇게 생산되지 않는다.
◇건강 환경 시민활동 세계 1위 가케가와
가케가와 시는 오른쪽에 됴쿄, 왼쪽에 오사카를 각각 한 시간 거리에 두고 있다. 도시화 이후 가케가와 시민들은 동경이나 오사카로 빠져나갔다. 베드타운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사 위기에 처한 가케가와 시의 역발상은 여기서 시작됐다. 가케가와 시민들은 지역 살리기 적임자를 찾아나섰다. 산림과 환경이 주요자원인 가케가와 시를 잘 알고 있는 산림조합 전무 신무라 준이치(사진)를 시장으로 당선시켜 26년간 뜻을 펼치게 하였다. 신무라 전 시장은 평생학습을 도시의 가장 중요한 시책으로 정했고, 초기에 사업을 정착시키는 데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정부 지원을 얻어냈다. 가케가와 시의 '평생학습 30년'은 인구 11만 명에 불과한 가케가와 시를 건강, 환경, 시민활동 세계 1위라는 명품도시로 만들었다. 지역에서도 잘살 수 있으니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숙원사업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글로벌지식경제도시 대구 맞아?
인천시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어마어마한 정부자금을 평생학습도시 조성에 끌어왔고, 대전시는 이상민 의원(한나라당)이 평생학습을 위한 예산확보에 앞장서고 있다. 정치지향적인 대구시의 국회의원들은 평생학습에 관심이 없다. 대구시가 평생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질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예산확보도 해주지 않는다. 2011 대구시 업무계획을 보면 대구시는 글로벌지식경제도시를 지향하고, 글로벌지식경제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학습이 중요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행동은 없다. 예산도 조직도 전문가 영입도 없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평생학습에 대한 예산배정과 인력배치는 꼴찌다. 대전발전연구원 이창기 원장은 평생학습의 전도사라고 할 만큼 21세기 평생학습에 걸맞은 정책을 대전시에 제안했고, 염홍철 대전시장은 대전평생교육진흥원을 설립했다.
◇학습은 사람을, 사람은 지역을 바꾼다
권두승 한국평생교육학회장(명지전문대 평생교육본부장)은 "지역이 사회의 구조적 변화 흐름을 따라잡는 데 평생학습은 필수"라며 "과거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 사회가 유지 발전되었지만 이제는 변화를 지향하는 다수 대중이 힘을 합쳐서 뭔가를 만들고, 단편적인 지식을 융합하고 상상력을 더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지역사회가 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이제는 일방적으로 만들어놓고 주입하는 평생교육의 시대가 아니라 학습의 자생력을 길러주고 자기주도적으로 행하는 평생학습의 사회"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자기주도성을 발휘하는 평생학습사회의 대표적인 사례가 대전의 배달강좌제이다. 대전시에서는 올해 예산 11억원을 투입, 대전시내 전역에서 5명 이상 모여 특정 강좌를 원하면 어디든지 강사를 파견해주는 배달강좌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미 국내 10여 개 도시가 벤치마킹해간 배달강좌제는 '학습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은 지역을 바꾼다'는 모토하에 대전 대덕구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 대덕연구단지가 모여 있는 유성구에 비해서 열악한 정주 여건을 지닌 대덕구를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시키는 마력을 발휘했다. 대구에서는 달서구가 배달강좌제와 같은 맥락인 파견강사제를 도입,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 달서구 강사파견제 40여 강좌나
배달강좌나 강사파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사는 집이나 내가 다니는 직장 부근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주제의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전시의 경우 1강좌 당 20시간 내지 30시간을 배정하고, 이 가운데 1시간은 '대전학'을 듣게 한다. 대전시는 평생학습 안에 대전학을 삽입하고, 자연스레 대전시가 안고 있는 장단점을 시민들에게 알려주면서 시민사회 리더로 키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 개발됐으나 대전 대덕구에 도입되어서 더 큰 발전을 보인 배달강좌제는 대전시의 경우 천수백 종에 이른다. 배달강좌제를 통해서 관심사를 배우고 심화시켜 다시 평생학습 강사로 나선 인력만 1천 명에 이른다. 평생학습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1천 명의 평생학습강사는 정규직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배달강사들이 고학력 비취업 여성들이어서 유휴인력을 통해 경제활동인구로 끌어들이는 '작은 일자리' 1천 개가 창출된 셈이다.
대구 달서구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에 40여 강좌에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변형된 배달강좌제인 달서구청의 파견강사제는 일단 검증된 강좌만 인정,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현장 마찰을 없애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해 설문조사를 통해 평생학습에 참여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유를 파악한 결과 '시간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란 응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양한 형태로 배달강좌제를 평생학습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글·사진 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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