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마침표 '웰다잉'…'삶의 새코드'로 인식변화

급속한 노령화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다잉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구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웰다잉 특별 세미나는 초만원을 이루었다.
급속한 노령화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다잉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구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웰다잉 특별 세미나는 초만원을 이루었다.
웰다잉을 주제로 한 연극
웰다잉을 주제로 한 연극 ''춤추는 할머니'.
'행복한 죽음''

지난달 29일 오후 1시 30분 대구시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대강당.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이 주최하는 특별 세미나가 시작되려면 30분이 남았지만 이미 좌석(330석)은 가득 찼다. 행사가 시작될 즈음에는 통로에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들로 북적였다. 빈 좌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통로까지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성황은 행사를 주관한 측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좌석 수에 비해 넉넉히 준비했다는 500부의 안내책자는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행사가 시작되기 전 동이 났다.

사실 이날 특별 세미나 주제(아름다운 마무리,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잘 사는 것'(웰빙)이 아니라 '잘 죽는 것'(웰다잉)을 목적으로 마련된 세미나였지만 반응은 예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600~700여 명. 모두 60~80대 어르신들이다. 이영주(78'여'대구 수성구 범어4동) 씨는 "언젠가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이다.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세미나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급속한 노령화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다잉'(well-dying) 열풍이 불고 있다. 웰다잉은 '품위 있는 죽음'을 지칭하는 용어. 웰다잉이 사회 트렌드로 부각하면서 웰다잉을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웰다잉 지도자 양성 과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웰다잉은 웰빙의 완성

한국에 웰다잉 문화가 소개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1991년 창립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죽음학 공개강좌와 공동 추모제 등을 통해 웰다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에는 웰다잉 전문 지도자를 배출했고 2009년에는 '웰다잉 연극단'도 창단했다. 지난해에는 '웰다잉 영화제'를 열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웰빙의 연장선상에서 웰다잉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웰빙이 완성된다는 것. 강진구 고신대 교수는 "질적인 삶이 추구하는 방향의 최종선상에 건강하게 살다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죽음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필요한 죽음준비교육

웰다잉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죽음준비교육이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 죽음교육을 공론화하고 학교에서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공립 초'중'고교는 죽음에 관한 책이나 시, 음악을 공부하고 장례식장과 묘지를 방문한 뒤 토론하는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독일에서는 죽음에 관한 고등학교 교과서가 20여 종 출간되어 있다. 대만에서도 죽음학이 고교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죽음준비교육의 불모지다. 정규 교과과정에 죽음학을 도입한 사례가 없다. 웰다잉 열풍이 불면서 관련 단체에서 단편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E.I.U가 OECD 회원국을 비롯해 40개국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32위에 올랐다. 세계 10위권을 자랑하는 경제 규모에 비해 한국의 죽음문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드러낸 지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웰다잉을 위해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죽음준비교육은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가 받아야 할 교육이라고 지적한다. 최준식 한국죽음학회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죽음교육의 부재로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의 죽음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을 모르고 지낸다. 반면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죽음교육이 생활화돼 있다"고 말했다.

강혜자 각당복지재단 이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고 부도덕한 이미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대상이다. 죽음교육은 죽음에 대한 금기와 공포를 극복하고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용서와 화해 등 묵은 감정도 정리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루빨리 죽음교육이 보편화 되어야 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확산되는 웰다잉 문화

지난달 울주군시설관리공단은 울주서부노인복지관과 울주남부노인복지관에서 웰다잉 연극 '행복한 죽음'을 공연했다. '행복한 죽음'은 장두이 서울예대 교수가 만들고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2009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한 김할머니 사건을 모티브로 존엄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달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창작극 '꽃샘추위'가 공연됐다. 극단 '블루 바이씨클 프러덕션'이 만든 '꽃샘추위'는 어느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25세 배우 지망생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실존적으로 다루고 있다. 김준삼 연출가는 "많은 사람들이 웰빙에 대해 얘기하지만 오히려 웰빙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주인공 이야기를 통해 웰다잉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고 제작의도를 밝혔다.

또 최근 서울 노원구 노원평생교육원은 웰다잉 프로그램의 하나로 입관식 체험과 죽음이 임박했을 때를 대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 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는 창립 7주년을 기념해 연극단 '해너미'를 창단한 뒤 웰다잉 연극 '춤추는 할머니'를 대구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공연했다. '해너미'는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의 웰다잉 교육을 이수한 평범한 중노년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연극 '춤추는 할머니'는 90세 생일을 맞은 할머니가 가족들의 아픔을 하나하나를 어루만져주고 춤을 추며 죽음을 준비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춤추는 할머니'는 초청 공연이 가능하다.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053-781-8034)에 연극단 초청을 의뢰하면 찾아가서 공연을 해준다.

출판계에서도 웰다잉 바람이 불고 있다. '행복과 희망을 전달하는 웰다잉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비롯해 '아름다운 마침표''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인생 멋지게 내려놓은 방법 웰다잉''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 등 웰다잉을 다룬 국내외 저서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특히 한국죽음학회가 웰다잉 실무지침서로 내놓은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은 출간 1주일 만에 재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은 ▷죽음의 준비, 병의 말기 진단 전에 해야 할 일 ▷말기 질환 사실을 알리는 바람직한 방법 ▷말기 질환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글 ▷임종 직전, 죽음이 가까웠을 때의 증상 ▷떠나는 것 받아들이기와 작별인사 ▷망자 보내기, 장례 ▷고인을 보낸 이의 슬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 등을 담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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