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의 상처는 깊었다. 그러나 희망은 꺾이지 않았다. 3'11 도후쿠 대지진이 할퀴고 간 뒤 7개월 만에 찾은 일본 열도는 재건을 위한 열정으로 가득 찼고 온정의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었다.
◆일본의 상처
지난달 30일 오후 일본 미야기현 유리아게시. 높이 3m가 넘는 대형 쓰나미가 순식간에 삼켜버린 인구 7천여 명의 해안마을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처가 선명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외벽에 내걸린 대형 시곗바늘처럼 굳게 멈춰 있었다. 2시 50분. 지진발생(오후 2시 46분) 4분 만에 평온했던 마을이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었던 것.
현장 사정도 비슷했다. 마을에는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건물 잔해만 즐비했다. 쓰나미가 남긴 진한 염분 냄새도 진동했다.
주민들은 평지인데다 마을이 해안가에 붙어 있는 탓에 피해가 컸으며 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미야기현 관계자는 "계속해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지만 워낙 피해가 커 현장 정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센다이 공항으로 향하는 길도 비슷했다. 일그러진 건물 앞마당에 나뒹굴고 있는 배와 엿가락처럼 휜 철제 난간, 깡통처럼 찌그러진 자동차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울창했던 방풍림도 뽑혀 나가 드문드문 비었다.
지금은 전 노선이 개통됐고 복구를 마친 센다이 공항 역시 당시에는 3m 이상의 쓰나미가 덮쳐 공항 기능이 완전히 잃었다.
이토 가츠히코 센다이 공항 사장은 "거대한 자연 앞에 일본 10대 공항인 센다이 공항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이용객들이 3일 동안이나 옥상에서 고립돼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 3경 중 하나로 꼽히는 미야기현 마쓰시마도 복구 작업을 하는 중장비 소리가 부두가 갈매기 소리를 잠재우고 있었다. 곳곳에서 안전모를 눌러쓴 인부들의 망치 소리가 새 나왔다. 이곳 역시 지진 발생 후 3.8m 쓰나미가 급습했다. 부둣가에 정박 중이던 26척의 배가 실종됐고 아직 6척은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사토규이치로 마쓰시마 관광협회장은 "당시 1천200명의 관광객이 있었는데 산으로 대피했다"며 "대형 수족관에는 전력이 끊겨 물을 직접 데워서 고기를 키웠고 전기가 없어 결혼식 전용 호텔에서 공수한 양초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희망
큰 상처만큼이나 치유의 손길은 따뜻했다. 마쓰시마의 경우 세계 각지에서 모인 1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밤낮으로 복구를 진행했다.
주민 마쓰오카 마사노리(55) 씨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도우러 왔을 때 나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서 감격했다"고 말했다. 미야기현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정신적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대부분 '나만 슬픈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내색하지 않고 서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도 복구 과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K-POP 커버댄스 등 한류를 통해 친구가 되고 센다이 지역 피해 주민들에게 공연을 여는 등 위로를 해 주고 있는 것.
실제 이달 2, 3일 도쿄 롯본기힐즈에서 열린 '한'일 축제한마당' 행사는 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양국이 함께하는 위로의 장이자 희망의 장이 됐다.
이날 '한류'로 인연이 된 친구들과 행사장을 찾았다는 후지이 유미(19) 양은 "K-POP을 좋아하다 보니 트위터로 알게 된 친구들과, K-POP 가수들이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해 모금하는 콘서트를 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야기현 센다이 하치겐중학교의 합창단과 도쿄 국제한국인학교 합창단이 합동공연을 선보여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행사를 주최한 주일 한국문화원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 국민을 위로하고, 한'일 양국 국민이 손을 잡고 미래를 지향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밝혔다.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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