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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만 한 선수들도 꼼짝 못해요"…씨름 여성 심판 1호 전은숙 씨

씨름 여성 심판 세계 1호인 전은숙 심판이 지난달 22일 열린 2011 대구시 씨름왕 선발대회에서 심판을 보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씨름 여성 심판 세계 1호인 전은숙 심판이 지난달 22일 열린 2011 대구시 씨름왕 선발대회에서 심판을 보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씨름 여성 심판 세계 1호인 전은숙 심판이 8차례 한라장사에 오른 남편 강순태 장사와 포즈를 취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씨름 여성 심판 세계 1호인 전은숙 심판이 8차례 한라장사에 오른 남편 강순태 장사와 포즈를 취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011 대구시 씨름왕 선발대회가 열린 지난달 22일 대구시민체육관. 가냘픈 몸매의 한 여성이 호각을 불며 뚜렷하고 힘찬 몸동작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모래 경기장에서 힘과 기술을 선보이는 씨름은 우람한 체격의 선수들이 겨루는 경기라 이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은 눈에 확 틔었다.

국내 여성 심판 1호인 전은숙(42'대구 성동초교 교사) 씨다. 전 씨는 국내 첫 여성 심판이냐고 묻자 씨름이 우리 전통 스포츠라 "세계 1호 여성 심판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 심판은 이날 초등부와 장년부, 여성부 60'70'80㎏ 등 5개 부문의 4강 경기에서 심판을 무난히 봤다. 그가 심판을 본 장년부의 한 경기에서 이의신청이 들어와 합의 판정이 내려졌지만 애초 그가 내린 판정 그대로였다.

전 씨는 씨름 심판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씨름 경기의 심판 제의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경기장에서 심판으로 데뷔했을 정도다.

"올 6월 열린 2011 서울한민족동포씨름대회 겸 월드씨름챔피언십 대회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세계씨름연맹의 차경만 사무총장과 대회 지원방안을 얘기하다 '여자경기의 심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씨름 선수 출신으로 연맹의 시설위원장을 맡고 있어 별생각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전 씨는 부랴부랴 남편과 여자 씨름 선수들을 상대로 일주일 동안 심판 훈련을 한 후 이 대회에서 심판으로 활동했다. 이번 대구 씨름왕 대회는 그가 심판으로 나선 두 번째 무대다. 대구 대회의 심판은 대구시씨름연합회 배오석 회장대행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그를 씨름 무대에 서게 한 실제 주인공인 남편은 1990년대 초반 씨름왕대회에서 한라장사를 8번이나 차지한 대구 영신고 출신의 강순태(46) 장사다. 강 장사는 아내가 심판을 볼 때마다 경기 진행을 지켜보고 코치를 한다.

"경기 사이사이 틈날 때마다 심판 출신인 남편에게 불려 갑니다. 남편이 주로 잘못한 점을 지적하지만'빨리 적응한다'며 칭찬과 격려로 힘을 냅니다."

전 심판은 연애 때부터 줄곧 씨름계에 몸담고 있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씨름 심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편이 심판을 볼 때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심판을 해 보니 힘이 많이 들고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모래판이라 걷기 힘들고, 선수들의 덩치가 크다 보니 체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세를 낮춰 선수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금방 지치고 땀을 쏟아 냅니다. 그래서 운동(배구)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 씨는 지금 만능 스포츠 우먼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결혼 전까진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초등학교 교사였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서울교대를 나온 그는 1993년 12월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남편을 만났고, 1994년 3월 결혼 후 대구로 학교를 옮겼다.

"진주서 여중 동창인 친구의 남편이 한라장사를 역임한 이기수 장사입니다. 친구의 집들이에 갔다 역시 집들이 온 남편을 만났는데, 열렬한 구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했습니다. 연애할 때 수원에서 열린 대회를 딱 한 번 구경 갔는데 그 때 남편이 8번째 한라장사로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결혼했죠."

전 씨는 대구 첫 부임지인 삼덕초교에선 배구 감독으로 활약하며 전국소년체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도 일궈냈다. 이 때 인연으로 지금도 거의 매일 삼덕초교를 찾아 배구를 한다. 삼덕초교 여자 배구 팀의 경기 파트너가 없어 교사 팀의 일원으로 상대를 해주며 건강을 관리한다는 것. 이 덕분에 그는 중2와 고1인 두 아이를 두고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또 그는 특수반 교사로 근무하는 성동초교에선 유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도 선수 출신이 아니라 실력은 부족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이제 심판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전 씨는 앞으로 심판 활동에 대해 "씨름 무대에도 조만간 여자 팀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자 심판도 필요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우리 전통 스포츠인 씨름이 생활체육으로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씨름이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운동으로 생활 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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