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양복을 꺼내 입을 때가 된 걸 보니 수능시험이 눈앞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전투태세에 들어가야겠습니다."
26년째 대입 분석에 매달려온 대성학력개발연구소 이영덕(54) 소장은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입시 전문가다. 그는 매년 수능시험을 전후해 신문, 방송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말과 글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겐 성서로 회자될 정도다. 그가 만든 대입 배치기준표는 각 고교, 학원가에서 대입 전략을 짜는 잣대가 된다.
이 소장은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기로도 유명하다. 전국을 돌며 연중 200여 회 입시 설명회를 갖는데 성당, 교회, 절에서도 설명회를 가진 적이 있다. 휴대전화도 매년 바꿔야 할 만큼 통화량이 많다. 수첩에는 연간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서울 노량진 대성학력개발연구소에서 이 소장을 만나 대학입시와 함께 한 그의 인생 여정과 향후 대입 제도 변화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입시 전문가로 산 26년 인생
"입시 이야기만 하라면 말이 술술 나오는데 인생 이야기를 하라니 영 쑥스럽네요."
수능시험 전후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들 중 하나가 유명 입시학원의 입시전문가들이다. 26년째 대입 분석이라는 외길을 걷고 있는 이 소장은 그 가운데 맏형 격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 등 젊은 세대가 활약 중이지만 그의 위치는 아직 흔들림이 없다.
사교육 시장에서 최고의 입시 전문가로 꼽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입시학원 쪽으로 눈길을 돌린 건 아니었다. 부산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교직에 몸담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2년 만에 박차고 나와 1986년 대성학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시골 출신에다 재수 경험도 없어 이처럼 큰 규모의 학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죠. 일단 6개월만 일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원에 가겠다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대입 자료를 분석하는 일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그 후 이 길만 쭉 달려온 겁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학력고사 대신 수능시험 도입이 확정되고 난 뒤부터. 1994년 첫 수능시험이 치러진 날 저녁 한 방송사의 문제 풀이와 해설 코너에 얼굴을 비춘 이후 각 언론사에서 잇따라 러브콜이 들어왔다. 생방송에서 시청자 전화를 받고 즉석에서 대입 상담을 하는 등 수차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얼굴이 알려졌고 입시 분석가라는 직업도 자리를 잡게 됐다. 2002년부터 대입이 수시와 정시로 구분되는 등 제도가 다양화하면서 그의 일은 더욱 많아졌다.
"전국을 돌며 입시 설명회를 하다 보니 여태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탄 것만도 1천400회가 넘어요. 얼굴이 많이 알려진 덕도 꽤 봤죠. 한번은 처음 들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그곳 사장님이 보기에 제가 낯익었나 봐요. 단골이니 세차는 공짜라더군요."
이 소장은 대구와의 인연도 깊다. 학원가에 첫발을 디딜 무렵 그에게 일을 가르친 이 가운데 한 명이 작고한 권충길 일신학원 고문.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권 고문에게서 대입 자료 분석부터 배치기준표 만드는 일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그 인연이 이어져 현재 이 소장은 대구 송원학원 평가이사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당시엔 대구에 대입 정보가 가장 많았어요. 전국 대학별 배치기준표 제작도 대구에서 했을 정도니까요. 특히 권 고문께는 많이 혼나면서 일을 배웠죠."
초년병 시절과 다름 없이 이 소장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잦은 출장과 연이어 밀려드는 입시 설명회 일정 등으로 강행군을 이어오고 있다. 대입 제도가 자주 바뀌는데다 갈수록 다양화하면서 비수기도 없어져 쉴 틈이 없다. 그래도 그는 10년만 더 이 일을 하겠다고 했다.
"제 말 한마디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커요. 하지만 상담했던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때, 설명회에 와서 귀 기울이는 학부모들을 봤을 때 그 스트레스는 모두 날아갑니다. 이 일을 접은 뒤에는 무료로 대입 상담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받은 사랑만큼 돌려줘야죠."
◆대입 제도 변화, "공교육이 못 따라가 아쉽다"
"입시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는데다 복잡해지는 건 문제가 있어요. 자연히 사교육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죠. 공교육에서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아쉽습니다."
이 소장의 말은 다소 낯설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교육 업계보다는 교육 자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토로했다. 교육 정책과 입시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교육 당국이 이 점을 소홀히 생각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교 고학년이 대학에 갈 때까지 대입 제도가 안 바뀌면 스스로 준비할 수 있어 사교육 의존도도 낮아지겠죠. 하지만 현재 대입 세부 요강이 3천300여 개가 되는데다 매년 바뀌고 있어요. 수험생과 학부모가 대입전형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비하는 게 힘드니 사교육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요."
공교육 분야에서 변화하는 대입 제도에 대한 대처가 늦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내신 실제 반영비율이 점차 줄고 있어 논술, 적성검사 등 대학별고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신과 수능시험 성적에만 관심을 쏟는 고교가 많다는 것.
"입시 설명회를 할 때 자료를 미리 보내줘도 제대로 안 보는 학교가 여럿입니다. 일부 고교에서는 아직도 내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예요. 수시전형이 복잡한데다 자기소개서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일손이 덜 필요한 정시에 더 집중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발등의 불을 먼저 끄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바뀌는 제도에 따라 적응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이 소장은 이번 대입 제도가 내년까지는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2014학년도 입시 제도는 많은 변화가 따를 것으로 보여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능시험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출제 방향은 학력고사 시절에 가깝게 회귀한다는 것. 현재 고1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를 때는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 등 영역별 시험과 달리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로 나뉜 과목별 시험을 치르게 된다.
"출제되는 문제들도 교과서 내에서 나올 겁니다. 교과부에서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죠. 수시와 정시모집 비율은 6대 4로 유지되겠지만 수능 외국어영역을 대체하려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도입 여부가 내년 확정되면 말하기, 쓰기의 중요성도 커집니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논술 시험 대비다. 이 소장은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할수록 논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점수 차가 크면 우수 학생을 가리기 쉬운데 쉬워진 수능시험 때문에 상위권 주요 대학의 논술 선호도는 더욱 커질 겁니다. 하지만 논술 실력이 갑자기 키워지긴 어렵죠. 고1 때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올해 수능시험은 11월 10일 치러진다. 시험일까지 정확히 30일이 남은 셈. 이 소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영역별 만점자 비율을 1%로 조정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 언어, 수리영역은 9월 모의평가보다 다소 어려워지겠지만 외국어영역은 보다 쉽게 출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9월 모의평가에서 만점자 비율은 언어영역 1.96%, 수리 가와 나형은 각각 1.53%와 1.95%, 외국어영역은 0.32%였다. "수험생들에게 한 가지만 당부한다면 끝까지 EBS 교재를 손에서 놓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래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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