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다'.
원로배우 전무송(70) 씨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전 씨 또한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살아갈 거라고 단언한다. 뼛속까지 배우인 그가 대구 무대에 선다. 대구시립극단이 26일부터 공연하는 정기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에 더블캐스팅으로 아버지 윌리 역할로 출연하는 것. 전 씨가 대구 극단 공연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척 영광이죠. 좋은 작품에 나를 초대해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죠. 대구시립극단에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승낙했지요."
자상하게 미소 짓는 전 씨의 모습은 왠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작품은 1983년 처음 출연한 이후 이번이 네 번째예요.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있잖아요. 처음 공연할 때는 현실 속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세월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이 작품에 출연했을 때는 나도 의젓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죠. 그때는 실제 아버지 입장에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현실 속 아버지 모습으로 무대에 섰기에 사람들에게 '세일즈맨의 죽음=전무송'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전 씨는 배우의 길을 선택할 때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밟았다. 진로를 놓고 적잖은 방황을 한 것이다. 판검사를 바라는 아버지와의 갈등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좋아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 인천기계공고를 나와 한때는 전공을 살리려고 애도 썼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쇠가 깎여 녹이 스는 것을 보고 마치 자신이 녹이 슬 것 같은 두려움에 얼마 못 가 공장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1년 정도 방황한 끝에 1961년 서울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원래는 영화배우를 꿈꾸었지만 연기를 공부하면서 연극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연극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죠. 그 길로 연극으로 배우로 입문했죠. 15년 정도 드라마센터에서 연기를 닦은 것 같아요." 연극배우로서의 첫 작품은 1964년 공연한 춘향전이었다. 그 작품에서 이몽룡 역을 맡았다. 전 씨는 춘향전이 데뷔 작품인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후 극단 드라마센터를 창단해 연극 '마의태자'를 공연했고 1975년 국내 최고의 연극배우들이 모여 있는 '국립극단'에 뽑혔다. 전 씨는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TV 문학관'을 비롯해 영화 '만다라' 등을 통해 연극뿐 아니라 TV와 영화에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제1회 연극 비평가상 연기상, 제20회 대종상 남우 조연상, 제6회 대한민국 연극제 연극상 등 각종 상을 받았다.
전 씨는 배우의 매력을 '인생'이라고 했다. "인생을 공부할 수 있는 거죠. 한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삶이나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절실히 느끼죠. 과거나 지금이나 연극을 통해 공부하는 것이죠." 전 씨는 내년이면 배우 생활 5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해 후배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전 씨 가족은 '연극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아들과 딸이 모두 배우이고 사위까지 배우다. 6년 전쯤 같이 희극을 선보여 거창연극제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란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려운 직업이죠. 창조하는 직업이라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통이 많이 따르죠. 하지만 명심할 것은 무조건 참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죠. 배우라는 길은 그렇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5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그의 성숙한 연기가 벌써 기다려졌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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