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현미바람이 불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현미를 먹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2년 전쯤부터 갑작스레 현미 애찬가가 퍼지더니 최근엔 한 집 건너 현미를 먹고 있다. 현미 바람은 청와대까지 전해져서 영부인도 현미를 먹고 살이 빠졌다고 한다. 이렇게 전국적인 현미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 대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최근 현미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대구의료원의 황성수 박사다. 20년째 현미를 밥으로, 오로지 채소만을 반찬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자신의 환자들에게도 식습관을 조절하도록 해서 약을 끊게 하고 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언젠가 직접 만나 가장 멀리서 온 환자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심 '제주도' 정도의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있더니 "알래스카"라고 한다. 놀라서 해외에서도 오느냐고 묻자 해외동포들 사이에도 입소문이 퍼져 미국은 물론 남미나 캐나다 등지에서도 입원을 하기 위해 꽤 온다고 한다. 황성수 박사의 현미 열풍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이런 소문을 아는지 눈 밝은 대구의 모 시의원은 현미채식치유센터를 설립해서 대구를 이 분야의 메카로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시의회에서 나온 제안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대구시의 담당부서에서는 산업적 효과의 불확실성과 임상실험 데이터의 부족 등을 이유로 현미채식치유센터의 설립에 대해 미온적이라고 한다.
우선 대구시에서 머뭇거리는 산업적 효과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미채식치유센터를 설립하는 것만으로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구시가 출자해서 만든 센터에서 과도한 비용을 책정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현미채식치유센터를 만들면 부가적인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미채식과 관련한 식품산업이 새롭게 떠오를 수 있다. 현미채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먹는지 어디서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고려해서 현미채식 도시락을 판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국으로 판매한다면 그 수요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금 더 활용한다면 관련 건강식품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식품산업은 불황이 없다. 최근 5년간 식품산업 연평균 성장률은 GDP 성장률을 웃돌았다.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생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총 생산액이 1만671억원으로 1조원 시장에 진입했고 전년대비 11% 증가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식품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큰 산업이기도 하다.
생산 산업 이외에도 현미채식을 통한 연구는 또 다른 산업분야가 될 수 있다. 식품의 효능과 관련한 분야의 연구는 꾸준히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관련 관광산업도 가능하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한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홍보하는 것 역시 한 방법일 것이다. 이 밖에도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거나 현미채식을 하는 건강한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현미채식이라는 키워드로 직접적인 사업 이외에도 다양한 관련 사업을 개발할 수 있다. 하나의 인기 소재만 있으면 추가적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전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현미채식이 소재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성수'라는 브랜드다. 현미 열풍의 원조가 직접 나서서 운영한다는 것은 가장 큰 강점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현미밥채식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있다. 조금만 자료를 찾아보는 부지런함이 있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라이스 다이어트센터만 참고해도 알 수 있다. 1939년 문을 연 이래 30만 명이 다녀간 곳이다. 미국 듀크대학의 한 의사가 심장병 치료를 위한 연구에서 출발했으나 치료의 부산물인 체중감량이 오히려 인기가 있어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생활 개선을 통해 고혈압, 당뇨, 암 등을 치료하고 있다. 역시 현미밥과 채소, 그리고 과일을 제공한다. 70년 동안 30만 명의 검증을 받았으니 충분한 임상데이터가 존재하는 셈이다.
등잔 밑은 어둡고 남의 떡은 더 커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찾아내고 자산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늘 힘든 일이다. 하지만 혁신과 창조는 내재적 자산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외부의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치와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구는 이미 새로운 성장 가능성의 씨앗을 여럿 품고 있다.
안 재 홍 녹색소비자연대 대구경북 사무처장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