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소잡아도 개잡으니까

기차 타고 서울 간 경상도 할머니 네 분이 택시를 세웠다. 승객이 4명이나 되는지라 기사가 오만상 인상을 찌푸린다. 승차를 거부하려는데 한 할머니가 하는 말, "소잡아도 개잡으니까 마 그냥 가입시더." "예? 소 잡고 개 잡는 데 가자고요?" '비좁아도 가까우니까 그냥 가자'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를 서울 택시기사가 알아들을 턱이 없다.

경상도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사투리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억양도 독특해서 서울말 배우기를 가장 힘들어 하는 이가 경상도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서울에 사는 경상도 젊은이 중에 사투리를 쓰는 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서울말인 것 같은데 억양은 경상도 식인 지역 불명의 말투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경상도 젊은이들의 서울말 적응기를 다룬 TV코미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개그콘서트'의 '서울메이트'란 코너다. 경상도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이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는다.

"와따 마 서울 직이네~." "정남이 왔니~?" "야! 니, 서울사람 다됐삣네." "그래, 난 서울사람이 되기 위해 가족이랑 전화통화도 안한 지 3개월째야."

'서울메이트'는 서울에서 사투리를 쓰거나 지방 출신 티를 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치더라도, 서울은 우월하고 지방은 뒤떨어진 곳이라는 내용이 반복되는 이 코미디를 보는 것이 웃기지만은 않다. 예컨대 지방에서 가져간 물건 등을 보면서 못볼 것을 본 것인 양 질색하는 설정 등이 그렇다. 똑같은 꿀인데도 '서울꿀'은 부우면 '꿀꿀꿀꿀 달다 달다' 이런 소리가 나고, '시골꿀'은 그냥 뚝뚝 떨어진다는 식이다.

굳이 코미디 프로에 딴지를 건 것은 사고가 언어를 규정하고, 언어는 다시 사고를 고착화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어서다. 그릇된 인식은 특정 단어에 나쁜 뉘앙스를 끼워넣는다. '지방'이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은 본래 '우리나라 어느 방면의 땅'이라는 가치 중립적 의미를 지닌 말인데 수도권 우월주의에 의해 '하찮은 곳' '사람 살만하지 못한 곳'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갖게 됐다.

연예인들조차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서울을 벗어났다 하면 '지방 공연'을 다녀왔다고 말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는 '지방'이라는 명사로 뭉뚱그려서 도매금으로 넘겨도 되는 가치밖에 갖지 못 한다. 이 모두가 수도권 우월주의가 낳은 말의 오염, 정신의 오염이 아닌가.

수도권 우월주의는 '지방대'라는 해괴한 말도 낳았다. 서울지역 이외의 대학은 '지방대'로 일괄 규정된다. 포항에 있는 포스텍이 지방대로 불리지 않는 것을 보면, 지방대란 용어는 '하찮은 대학'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억울한 평가절하가 또 있을까. 지방대란 말은 외려 점잖은 편이다. 취업전선에선 '지잡대'라는 단어마저 등장했다.

'서울특별시'라는 표현 역시 유감스럽다. 광주'대전'부산'대구의 '광역시'는 '면적이 넓은 시'라는 중립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유독 서울만 '특별시'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문한지는 몰라도 수도에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나라를 필자는 더 알지 못한다.

수도권 우월주의의 폐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 선전전의 첨병에는 서울지역신문들이 있다. 눈썰미 있는 독자분이라면 매일신문이 '중앙지'라는 표현 대신 '서울지역신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서울지역신문들이 수도권의 탐욕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벨트,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지역 현안에 대한 이들의 보도 태도에서 누차 확인된 바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대표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수도권은 지난 50년간 특혜를 받아 공룡처럼 덩치를 불렸다. 그건 비수도권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규모의 경제효과보다 수도권 비대화에 따른 비효율과 그 비싼 대가를 우리 사회는 치르고 있다.

특정집단 또는 지역의 탐욕은 전체 판을 깨뜨린다. 그 경보음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비수도권과 수도권, 강자와 약자의 공존'상생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김 해 용 편집부국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