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최중근의 세상 내시경] 킹스 스피치를 배워라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4관왕을 휩쓴 영화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였다. 1939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를 가진 왕이 이를 극복해 나간다는 실화가 바탕이 됐다. 영국 왕 조지 6세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형에 대한 열등감 속에 아버지의 권위에 주눅 든 채 자라온 조지 6세는 왕으로서는 치명적인 연설공포증을 갖고 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훌륭한 연설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을 감안하면, 연설공포증에 말을 더듬는 왕이 얼마나 곤혹스러울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다행히 조지 6세는 인간미 넘치는 언어치료사 라이오넬을 만나면서 증상을 차츰 치유해 나가고, 마침내 자신감을 회복해 당당히 대중 앞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화술과 연설법을 가르치는 스피치 학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굳이 왕이 아니라도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이 유리한 시대가 됐다. 도처에 강연 열풍이 불고, 스피치 화법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자신 있게 대중 앞에 나서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놀랍고도 내심 흐뭇하다. 숫기 없고 어수룩해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했던 우리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참 많이 달라졌다.

세계적인 스피치의 달인을 꼽으라고 하면 애플 CEO였던 고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다. 매번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잡스는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제품만큼이나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화제가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연설의 귀재다. 공화당원들까지 지지자로 돌아서게 만든다는 천부적인 연설 능력을 자랑한다. 케네디 이후 최고의 정치연설이란 극찬을 받았던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비롯해 실제 오바마의 연설은 청중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얼마 전 남아공에서 열린 평창의 최종 프레젠테이션도 장안에 화제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 등 무려 8명의 발표자가 나섰는데,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외신에서는 평창이 홈런을 쳤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김연아 선수는 "또 다른 김연아가 나오게 해 달라"며 IOC 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한국인 입양아 출신의 토리노 동메달리스트 토비도슨 선수는 "내가 운 좋게 미국에서 누렸던 기회를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도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며 호소 짙은 연설로 어필했다.

당초 평창의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은 투표인단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 목표가 적중한 셈이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말하기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과묵함과 수줍음이 미덕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서구에서는 지나친 수줍음(shy syndrome)을 일종의 장애로까지 여긴다. 진실성이 없는 요령뿐인 말은 문제가 되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표현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 되었다.

물론 말을 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가려서 듣는 습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말하기의 밑거름은 '경청'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단순히 잘 듣는 것을 넘어 잘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피드백을 통해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훌륭한 킹스 스피치가 필요한 시대이다.

(구미 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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