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이럴 수가 있나요?"
1986년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실무 서기관), 1988년 올림픽조직위(경기국장), 2002년 월드컵대회조직위(사무총장),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사무총장),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사무총장 내정)까지 체육 행정의 그랜드 슬램 달성자가 된 문동후(1949년생'김천 출생) 사무총장의 본인 코멘트다. 직접 들어봐도 가히 놀라웠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굵직한 스포츠 대회는 모두 그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오죽했으면 직업이 '사무총장'이라는 말을 들을까?
"언빌리버블!"(Unbelievable) 김천 촌놈이 6'25전쟁 때 대구로 피란와서 중앙초교-삼덕초교-동덕초교로 옮겨 다니다 경북대 사대부중을 졸업하고,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사법고시가 아닌 행정고시에 합격해 정통 관료가 되려 했다. "장관 정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나 그는 '체육인'이 되어 버렸다. 이젠 다들 문 사무총장을 체육인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세계적으로도 체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뜸 물었다. '실제 운동도 잘하나요?' 그는 작은 눈에 살짝 힘을 주며, "안 믿기겠지만 제가 사대부중을 다닐 때 배구선수 출신입니다. 그때 키(168㎝)가 지금 키니까 당시엔 제법 큰 편이었으며 중앙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초교 때도 육상 100'200'400m 계주의 학급 대표였습니다. 우리 반 '우사인 볼트'였죠. 하하하!(쑥쓰러운 듯 큰 웃음)"
좀체 크게 웃지 않는 그이지만 이날 인터뷰에서는 고향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때문인지 속 시원하게 여러 차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속에 있는 것은 뭐든지 다 내 줄 태세였다. 그런 모습에 기자도 흐뭇했다.
이제 결산총회(11월), 해산총회(12월), 청산절차(2012년 2월쯤 완료)만을 남겨두고 있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문동후 사무총장을 11일 만나 허심탄회하게 속 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감사합니다! 조해녕 위원장
"조해녕 위원장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구 유치를 결정하신 분이고, 각광 받을 기회는 현 김범일 시장에게 돌리고, 공동위원장을 맡았지만 사무총장인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대회 성공 유치에 불필요한 걸림돌을 솔선수범해서 제거해 주셨습니다. 대회 관련 결제도 모두 제가 대신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 위원장의 경북고-서울대 법대 후배이면서 행정고시 후배이기도 한 문 사무총장은 인터뷰를 통해 조 위원장에게 특별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진심이었고, 대구시 역시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현 시점에서 마음도 한결 편했다. 이제 조직위에 파견되어 동고동락했던 공무원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다들 고생한 것을 인정받아 희망부서나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니 내심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도 밝혔다. "잘됐죠. 깐깐한 저랑 일하면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 끝나고 나니 다들 찾아와 인사를 하는데 보람찬 일을 했다는 그 마음은 느낄 수 있었죠. 제가 감사합니다."
더불어 그는 대회기간 동안 KBS의 하이라이트 중계를 비판해 전 경기 중계로 바꾸고, 서울지역 언론사의 '지방 무시병'에 맞서 싸우면서 대구시민들의 단결과 자존심 회복에 큰 도움을 준 매일신문에도 감사를 표시했다.
◆고향 대회라 더 감격이 커
그는 대회 성공의 감회를 반대로 얘기했다. "고향에서 열린 국제대회인데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사무총장을 맡기도 힘들었겠죠. 그렇지만 대구 대회는 대성공이었기에 맘 편히 또 다른 국제대회(평창 동계올림픽)를 맡기로 했습니다. 운이라면 운이고, 운명이라면 운명, 팔자라면 팔자겠죠."
조심스럽게 이런 말도 했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 혼자 해 먹는다' '문동후밖에 없나' 등. 하지만 어떡합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맡게 되는 이 기구한 사연을. 이런 사명을 대한민국이 문동후라는 사람에게 내렸다면 받아들여야죠.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 전 칠순입니다. 그때 말하겠죠. '칠순 잔치는 끝났다'."
실제 그랬다. 문 사무총장은 체육 행정의 그랜드 슬램과는 다른 행정가가 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원래 사무총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홈페이지 관리 부실)으로 사무총장이 사퇴해 그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다 다시 '문동후'라는 사람을 앉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서울 올림픽 이후에 청와대, 총무처, 소청심사위원회 등의 핵심부서에서 차관급까지 승진해 잘 일하고 있었는데 또 월드컵 체육 행정으로 빠지더니 이젠 아예 사무총장만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평창까지 끝나면 18년입니다.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까지 했습니다."
이런 운명을 준 그에게 대한민국은 근정포장(1979년), 체육훈장 거상장(1989년), 홍조 근정훈장(1992년), 체육훈장 청룡장(2002년)도 줬다.
◆'짜다 짜', 지역에 돈 좀 풀지?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살림살이를 맡은 그는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짜다 짜' '지역에 돈 좀 풀리도록 하지' '왜 그렇게 깐깐하게 하느냐' 등의 쓴소리와 불만을 많이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고스란히 인정합니다. 다소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적은 살림에 예산을 짜다 보니 대부분의 사업에 공개입찰 등을 통해 경쟁을 붙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더 싸고 경쟁력 있는 곳에 맡겼습니다. 입찰경쟁에서 탈락한 지역업체 등에는 다소 유감인 측면이 있습니다."
비판을 흔쾌히 받아들인 데에도 이번 대구 대회의 대성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번 대회는 청산하는 데 아무런 오점도 남기지 않고 있어 마음이 편하다. 대회조직위가 청산절차에 들어가면 업체들과 여러 가지 문제 등으로 소송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현재까지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체육 행정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문 사무총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는 모두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져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안전, 국민 참여 등에서 효율적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번 대구 육상대회처럼 민간 부문이 더 크게 작용해 대회 성공의 큰 부문을 차지할 때가 왔습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도와야 할 일은 많겠지만…."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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