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시금치가 2가지 있다. 포항 시금치와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나는 '비금도 시금치' 일명 섬초이다. 포항 시금치나 비금도 시금치 둘 다 해풍 거센 바닷가 노지에서 태양을 듬뿍 안고 자라서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하고 단맛이 강하다. 몸체는 작달막하지만, 붉은 뿌리가 선명하고 영양이 풍부해서 일반 시금치의 두 배 정도 값이 매겨진다. 포항 시금치는 단으로 묶어서 판매하지만 비금도 시금치는 단으로 묶지 않고 박스에 담겨 전량 서울 가락시장으로 나간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제철인 비금도 시금치는 지난해의 경우 인근 무안 시금치보다 값이 두 배나 되는 10㎏에 3만~4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비금도 시금치 상자에 한글로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넣은 전남 신안군 비금면 지당리 지동마을 '비금도 시금치 할머니'들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서울사람들이 알아주는 비금도 시금치를 평생 재배해 내다 팔았지만, 시금치 박스의 이름은 늘 이 동네 명영봉 이장이 대신 써주었다. 지동마을 할머니 30명 중 15명이 이름을 쓸 수가 없었다. 명영봉 이장은 신안군에 건의했다. "우리 섬에 출장 한글 교실을 열어주세요." 그렇게 신안군 비금면의 찾아가는 문해교실은 시작되었다. 세상경험이 풍부한 할머니들은 6개월 만에 이름을 찾았다. 비금도 시금치가 제대로 주인을 찾은 것이다.
◇전국은 찾아가는 문해교실 열풍
"요즘 세상에 한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뜻밖에도 지금 우리나라에는 문해교육 붐이 일고 있다. 문해교육에 참여하는 지자체는 2006년 61개, 2007년 108개, 2008년 118개로 늘어나고 있다. 문해교육을 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현상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찾아가는 문해교육'으로 진화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갈증을 느끼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을 건네주는 '출장 문해교육' 전성시대이다. 이는 도시보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 더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충남 서산시는 처음 17개 마을회관에 '찾아가는 한글배움 교실'을 열었다.
하루 평균 300여 명이 배우러 왔다. 교육만족도도 97%나 되었다. '찾아가는 한글 배움교실'의 성황에 힘입어 서산시는 이를 30곳으로 늘렸다. 이뿐만 아니다. '찾아가는 한글 배움교실'은 더 발전되어 마을회관과 경로당에는 문고가 들어섰고, 한글을 터득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독서 프로그램까지 열린다.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서산시의 노력은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5천만원의 국비 지원을 받았다. 충남 부여군도 읍면 단위 '찾아가는 문해교실'에 현장 전문가를 투입하고, 전북 익산시의 '찾아가는 서동 한글교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 곡성군과 충남 태안군도 찾아가는 문해교실을 통해서 184명에게 '독서산'(讀書算'읽고 쓰고 셈하기) 학습을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외국인 근로자 출장교육
경기도교육청은 외국인을 위한 신바람 한글교실을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형태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첫걸음이자 사회통합의 정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기도 김포시 풍무고등학교가 지난 6월 개강한 '신바람 한글교실'은 첫 개강식을 학교에서 한 이후 후속 수업은 학교 인근 장릉공단의 ㈜동우인더스트리와 자매회사 ㈜엠에스 사업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는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인으로 이루어진 장기 연수생과 중국 자매회사 단기 연수생이 많았고, 김포 풍무고교의 '찾아가는 신바람 한글교실'에 5개국 28명이 듣고 있다.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퇴근 후 시간대인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매주 두 번 문해교육이 이뤄진다.
전북 진안의 찾아가는 은빛 문해반이나 충북 청양 찾아가는 초롱불 성인 문해교실도 같은 맥락이고, 충남 홍성군 평생학습센터, 충남 아산도서관, 경기도 김포 평생학습센터, 제주도 서귀포시평생학습센터, 충북 청주 평생학습관도 '찾아가는 문해교실'을 통해 국내외 비문해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스며들고 있다.
충남 아산도서관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한글교실을, 강릉시 평생학습추진단은 여성문화센터나 평생교육정보관 외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 학교인 강릉성덕등불학교, 강릉인문중고등학교 등으로 확대시켰다. 충남 평생교육원은 목천읍 삼성리 소재 부영아파트에서 '찾아가는 사랑방 문해교실'을 열고 있다.
◇학교도 학생 교육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이미 타 시도에서는 학교도 학생 교육을 넘어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까지 관심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보태면서 사회통합을 시도하고 살맛 나는 지역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인간답게 사는 기본이 될 성인 문해교육을 통해서 사회적 통합까지 시도하는 다른 시'도와 달리 대구시는 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기획관리실에 교육협력담당관을 포함한 3명의 인력이 평생교육 관련 업무를 보고 있지만 문해교육 담당자도 지정되어 있지 않고, 문해정책도 없다.
대구에는 비문해자가 15%(37만5천 명)에 이른다. 평생교육법에 따라 의무교육(중학교)을 마치지 않으면 비문해자로 분류하는 통에 숫자가 다소 늘어났지만, 국립국어원이 2008년에 조사한 결과에서도 완전 까막눈과 단어 한두 개 안다는 부분까막눈을 포함한 비율은 전 국민의 약 8%에 이른다.
대구사회에도 이 수치를 적용해보면 약 20만 명이나 까막눈 내지는 준까막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문해교육 현장을 가보면 읽고 쓰고 셈하는 독서산 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이 장난이 아니다.
◇대구시교육감이 학력인증기관 지정해야
이미 25년째 문해교육을 해오고 있는 대구의 대표적인 성인 문해교육기관 신암교회 부설 비영리법인 대구 아름다운학교(대표 권민희)가 열고 있는 문해교실에는 매주 250명 내지 300여 명이 수강 중이다. 문해교육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다. 대구 달서구에도 비정규학교(대구 해인학교, 삼일야간학교, 학산야간학교) 3곳을 포함하여 모두 10곳에서 권역별로 문해교육을 하고 있다. 송현권 본동 복지관, 상인권 상인복지관, 성서 신당복지관, 월배권 월성복지관, 본리권 학산복지관,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성서복지관, 장애인을 위한 대구청각언어장애인복지관에서 문해교육을 하고 있다. 대구 중구에서는 글사랑학교(대표 이경채)가 문해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성인학습자들이 문해교육을 받을 경우 학력인증제도까지 마련하고 있다. "평생교육법에 시도 교육감이 학력인증기관을 지정하거나 설치할 수 있도록 해두었으나 대구에는 학력인증기관이 한 곳도 없다. 대구시교육감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전은경(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심의위원·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는 지적한다. "학력인증체계가 도입된 만큼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고, 찾아가는 문해교실은 교육 양극화를 가장 최일선에서 해소하면서도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면에서 권장할 만하다"고 평가하는 전 교수는 대구도 외국인이 1만8천여 명에 달하고, 대구 인구의 약 15%가 비문해자로 분류되는 만큼 이들을 위한 평생교육이 가장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뜩이나 교육양극화가 심한데, 평생학습마저 가진 자, 배운 자, 있는 자 위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대구시에서는 성서공단, 범물동 임대아파트단지, 동구 반야월 등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나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에 찾아가는 문해교실을 우선 설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는 현재 10곳의 문해교육 인증기관(도표 참조)이 있다.
최미화 뉴미디어국장 magohalmi@msnet.co.kr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서 제작됩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