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군주에 대항하는 신하의 유세술·권모술수"

귀곡자 교양 강의/심의용 지음/돌베게 펴냄

귀곡자가 은둔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운몽선경.
귀곡자가 은둔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운몽선경.

'귀곡자'는 권모술수와 음모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외면 당해온 중국의 고전이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진나라의 중국통일 직전, 합종연횡의 전략으로 중국대륙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제후를 설득해 6개국 제후의 자격으로 유세함으로써 여섯 나라가 강력한 진나라에 대항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6개국의 재상을 겸임한 것은 역사상 유일무이하다. 장의는 뛰어난 지모와 변론술로 진나라 재상이 되었고, 소진이 만든 6개국 합종을 깨트렸다. 이로써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다. 소진과 장의 두 사람 손에 전국 후기의 제후들과 천하가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역사가 사마천은 이들 두 사람을 경위지사(傾危之士), 즉 '궤변을 통해 나라를 위태롭게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들의 설득력, 수사학적 능력은 인정한 셈이다. 이 위험인물 두 사람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귀곡자(鬼谷子)이고, 그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책이 '귀곡자'다.

'귀곡자는 위서다. 저자가 분명하지 않다. 신성방술이나 병가, 점성술과 관련이 있다' 등 책 '귀곡자'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최근 연구자료를 통해 볼 때 종횡가의 비조인 귀곡자가 실존인물이었으며, 유가의 도덕성이나 귀족적 신분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엄밀한 사회과학적 사고와 기술을 통해 현실개혁과 진보를 이룬 행동하는 집단"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다만 유가에 의해 저평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종횡가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로 열국(列國)을 돌아다니며 독특한 변설과 책략을 도모한 이들을 일컬으며, 열국의 연합체를 조직하고 그 힘의 균형을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던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천하를 돌아다니며 유세했고, 무력이 아닌 말을 통해 권력을 움직이고, 자신들의 뜻을 펴고자 했다.

'귀곡자'는 상대를 염탐해 그의 심리와 약점을 이용하고, 상대를 뺨치고 어르고 달래고, 위협하고, 칭찬해서 신뢰와 총애를 얻는 유세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유학자들이 이런 책을 소인배들의 책, 권모술수의 궤변을 늘어놓는 책으로 여긴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당나라 문인 유종원은 "그 말이 매우 기괴하고, 도리가 좁아터져 사람을 미치게 하고 원칙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평가했고, 명나라 선비 송렴은 "귀곡자의 패합술과 췌마술은 모두 소인들의 꾀로 집에 쓰면 집이 망하고, 나라에 쓰면 나라가, 천하에 쓰면 천하가 망한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 책을 신하가 군주에게 쓰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군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를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다. 많은 충신들이 직간하다가 죽음을 당한 것이 좋은 예다. 귀곡자는 신하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군주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 혹은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법을 가르친다. '한비자'가 신하를 견제하는 군주의 통치술을 담고 있다면, '귀곡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군주에 대항하는 신하의 유세술과 권모술수라고 할 수 있겠다.

지은이 심의용은 숭실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정이천의 '주역' 해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5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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