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노동당이 완벽한 사회보장제도의 실시를 주장하며 내세운 슬로건이다. 그때부터 반세기를 훌쩍 넘긴 21세기 대한민국.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사람의 생애는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 전문가들에 의해 실제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외부 전문가의 철저한 관리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면 집안 식구들이 아닌 장례 전문가가 매끄럽게 장례절차를 진행한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에듀케이션 플래너(교육 전문가), 데이트 플래너(이성교제 전문가), 웨딩 플래너(결혼 전문가), 프랭클린 플래너(시간관리 전문가), 재테크 플래너(재산관리 전문가), 실버 플래너(노후대책 전문가) 등 별별 플래너들이 인생항로에 코치 역할을 한다.
다양한 플래너의 출현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별별 플래너 세상은 편리하고 쉬운 길을 안내하는 지침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은 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절대 권장사항이 아니다. 플래너들이 생활의 어디까지 활동영역을 확장했는지 짚어봤다.
◆돌잔치 플래너
"그건 안 됩니다. 집안 경제사정에 맞게 하십시오.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돌잔치 전문 플래너 정광희(33) 아이스푼 대표가 돌잔치를 준비하려는 가정을 방문해 자주 하는 말이다. 정 대표는 결코 무리한 돌잔치를 권유하지 않는다. 규모와 예산, 고객의 스타일에 맞게끔 상담을 통해 장소, 돌상, 돌복, 사회자, 답례품, 스냅 사진 및 액자 등을 결정하도록 도와준다. 또 아이스푼은 EXCO박람회에서 제9회 대구 임신출산'유아교육 용품전뿐 아니라 피카소 아이스푼 돌잔치 박람회 등도 열어 유아를 키우는 주부들에게 관련 정보제공과 함께 홍보를 하기도 했다.
가격경쟁력은 임신 및 육아 전문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협찬 및 할인혜택을 고객이나 회원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는 '찜하기' 기능을 통해 본인이 직접 비용문제, 인원, 스타일 등을 고려해 선택하면 아이스푼에서 그에 맞춘 돌잔치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명품 돌잔치 플래너 사업의 시동은 이미 걸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급 선수들을 비롯한 지역의 유명인사들도 전문 돌잔치 플래너를 통해 자녀들의 돌잔치를 계획하고 있다. 정 대표는 "돌잔치가 집안마다 천차만별이고, 둘째, 셋째 아이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가정을 많이 봤다"며 "다변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어머니들의 고민을 보다 쉽게,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고자 전문 플래너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파티 플래너
플래너들이 일상 속에서도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게 플래너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플래너가 되어 남들을 도와주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수도 있다. 연예인들 중에도 웨딩 및 파티 플래너 등으로 전직하는 경우도 있다.
10여 년 전 광고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귀여운 여인', '헬로 발바리' 등에 출연했던 탤런트 김채연의 현재 직업은 파티 플래너다. 그녀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연예인)이 아닌 스태프(플래너) 역할을 자처하며 고객들의 품격있는 파티를 준비하는 직업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파티 플래너로 변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꽃과 요리를 공부하는 등 파티 플래너로 활약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길렀다. 이런 노력 덕분에'파티 바이 에스'(Party by S)의 대표인 그녀는 파티 콘셉트 구축에서 전체 스타일링, 플라워 데코, 테이블 세팅, 요리뿐 아니라 스티커 하나 붙이는 일까지 완벽하게 해낼 정도로 철저한 프로로 거듭났다. 김 씨는 "훌륭한 파티 플래너가 되려면 꽃과 요리, 디자인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지인들은 그런 절 보고 무인도에 떨어뜨려 놓아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장례 플래너(장례 지도사)
"제 할머니의 죽음을 보면서 이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딱 맞아요. 고인들이 꿈에 한 번도 안 나타났어요."
1989년생, 당찬 나이에 그 누구보다 장례식을 잘 이끌고,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전문 장례 플래너가 있다. 바로 한국교직원공제회 직영 상조회사인 '예다함' 대구지부의 장례 플래너이자 의전팀장 강주희(22) 씨다. 이 직업에 대한 사명감은 그 누구보다 투철하다. 어린 나이(중학교 시절)에 문틈을 통해 친할머니의 염(殮)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자는 여자가 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이 직업에 뛰어들었다. 경주 서라벌대 장례지도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2009년 창립한 '예다함'에 입사했다.
강 씨는 맑고 깨끗한 얼굴로 고객들에게 믿음을 줄 뿐 아니라 정성을 다해 장례식을 진행함으로써 고객 만족도 100%에 도전하고 있다.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달 평균 5, 6건 정도 장례를 맡게 되는데 처음 도착부터 염(시체를 곱게 단장)하는 일, 입관 및 발인, 장지까지 모든 일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일처리를 한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한 여성, 아무도 돌보지 않아 심하게 부패한 노인, 끔찍한 사고사 등 안타까운 죽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떠나보내는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이 고이 이들을 보내줄 수 있도록 제가 장례절차를 돕는 것이지요. 망자에 대한 예(禮)와 장례의 격(格)에 대해 항상 생각합니다."
장례 플래너는 사실 쉽지 않는 직업이기도 하다. 자신의 당직 순번일 때는 그 전날 모임이나 술자리 등에서 참석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 긴급 전화가 오면 출동해야 한다. 또 그 집안에 따라 요구 사항도 많아 그에 맞춰서 하려면 서로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은 전통적인 장례방식을 요구해 애로사항이 많이 따른다고 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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