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럽연합(EU)의 경제통합은 1950년 '쉬망-아데나워 선언'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프랑스 쉬망 외무장관은 '유럽 내에서 석탄'철강산업 분야에 대한 관리권을 초국가적 독립기구에 위임할 의사가 있는 나라들로 공동체를 구성하자'고 제창했고, 독일 아데나워 총리가 전격 합의했다.
이듬해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합세해 6개국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탄생했고, 이후 60여 년간 유럽 경제통합의 도도한 물결로 이어지고 있다.
1957년 로마조약에 따라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잇따라 출범했고, 1967년 3개 공동체를 발전적으로 통합한 유럽공동체(EC)가 발족하면서 92년 EU로 확대 발전했다.
대구경북에서도 장기 침체 국면의 지역경제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5년 전 변혁을 시도했다. 1981년 대구직할시 분리와 함께 나눠진 대구경북이 경제통합을 통해 새로운 발전 전략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다.
세계화의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뿌리인 대구경북이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2006년 3월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마침내 대구경북 경제통합을 선언했다.
시와 도는 이어 대구경북경제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2007년 12월 시'도의회에서 대구경북 경제통합 추진 조례를 제정했다. 시와 도의 정책 공조를 통해 대구경북 지식경제자유구역(2008년) 및 첨단의료복합단지(2009년) 지정 등 크고 작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대구경북경제통합 논의는 EU처럼 발전하지 못하고 2009년 이후 산산이 깨지고 있다. 통합추진위원회 해체 이후 통합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통합 논의도 덩달아 사그라지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의 명분과 당위성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전 세계 도시들은 새로운 거대 광역도시 개념 아래 너도나도 통합에 나서고 있고, 경제 분야부터 추진해 정치'행정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EU 역시 정치'행정 통합안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경제통합, 그중에서도 비교적 쉽고 효과가 가시적인 실물 부문의 장벽을 우선 제거해 왔다. 석탄철강공동체가 EU의 모태가 되고, 그 과정에서 서유럽, 북유럽, 중부'동유럽 국가들까지 대거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슈망-아데나워처럼 통합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정치 지도자들이 잇따라 출연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통합 운동의 비전과 청사진, 미시적 전략까지 제시하며 정치 엘리트의 역할을 다해 왔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 콜 총리 경우 1982~1992년 10년간 무려 115차례에 걸쳐 회동하며 경제 통합을 논의했다.
반면 대구경북 경제통합 논의 과정에서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은 어떠한가. 지난 2006년 3월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와 조해녕 전 대구시장은 대구경북 경제통합 MOU를 체결했다. 그해 7월 새로 취임한 김관용 도지사와 김범일 시장은 경제통합부터 추진해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구경북 경제통합은 갈수록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김 지사와 김 시장의 경제통합 논의 만남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지난해 재선 성공 이후 김 지사와 김 시장의 경제통합 추진 의지는 점점 더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EU 경제통합의 성공은 선견지명을 갖춘 정치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일궈낸 성과다. 사실상 중단된 대구경북 경제통합 논의를 다시 이어가기 위한 김 지사와 김 시장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이상준/경제부 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