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덜 월러스 감독의 영화 '솔져'(We Were Soldiers'2002년)는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월맹군이 벌인 최초의 주요 전투였던 1965년 11월 라 드랑 전투가 그 배경이다. 이 영화는 응엔 후 안 중령이 이끄는 월맹군 33연대에 포위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미 7기병연대 1대대의 치열한 공방전을 그렸다. 멜 깁슨이 열연한 해럴드 무어 중령과 그 부대원들이 벌인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장면은 승패를 떠나 지옥 같은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눈길 끄는 대목 중 하나는 무어 중령의 아내인 줄리아(매들린 스토우 분)의 손에 들린 전사 통지서다. 실제 라 드랑 전투에서 미군과 월맹군, 베트남군 통틀어 5천~6천 명이 죽거나 부상 당했다. 피차 피해가 컸던 탓에 우편배달원의 출현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표현하기 힘든 당혹감과 슬픔의 무게. 그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줄리아가 우편배달원을 대신해 직접 전사 통지서를 건네며 위로하는 장면은 전쟁에서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국가보훈처가 6'25 전사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단돈 5천 원을 계산했다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제동이 걸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쟁 때 폭격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머니, 어릴 때 다른 사람의 호적에 올랐다 뒤늦게 비극적인 가족사를 알게 된 60대 여성의 소설 같은 이야기다. 전사한 오빠의 존재를 알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 끝에 60년 만에 보상받는 참전용사의 '목숨 값'이 칼국수 한 그릇 값에 불과하다는 것은 유족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또 어떤가.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이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와 유족에게 후생 연금 수당으로 제시한 99엔 보상과 5천 원 지급이 무엇이 다른가.
유족들은 수억 원에 달한다는 프랑스'독일이나 이스라엘'대만과 같은 전사 보상금 규정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축구하다가 부상을 당한 공무원이 얼치기 유공자가 되는 현실에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참전 군인들의 피와 명예를 최소한이라도 보상하고 기리자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 전에 폐지된 군인사망보상금 5만 환을 현재 화폐의 명목가치로 산출해 5천 원을 지급하겠다는 보훈처의 발상은 무덤 속 전사자들을 벌떡 일으켜 세울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보훈처(報勳處) 이름이 아깝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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