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앞 아파트 다른 집안 풍경은 꽤 흥미롭다.
나와 똑같은 집안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일상과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뮌의 영상 설치 작품 '리드 미 투 유어 도어'(Lead Me to your Door)를 보면 그 경험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거대한 두상을 하고 있는 나무 조각 안에 제각각 모니터가 달려 있다. 모니터 속에는 거의 똑같이 생긴 방을 배경으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치 아파트 같다.
뮌은 여기에 방마다 의미를 담았다. '모녀의 방'에는 젊은 딸과 나이 든 엄마가 있다. 둘은 한 방에 있지만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소통하지 않는다. '거울의 방'에는 주인공 앞에 무수히 작은 거울들이 놓여 있다. 이 거울에 비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분열된 자아를 생각하게 된다.
'구원의 방'에선 한 남자를 추종하는 무리가 등장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추종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빗대고 있다. '소포의 방'에선 한 남자가 하루 종일 소포를 포장하고 뜯는 일을 한다. 파티를 하기도 하고, 노부부는 침대에 누워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뮌은 우리를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극적 상황으로 끌어들인다. 방은 상황에 맞게 밀도 있게 꾸며져 있고, 각 방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현대인의 일상 중 한 극단을 이야기한다. 삶의 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상 앞에서 관객들은 솔깃해진다.
"군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원래 88개의 영상을 제작했는데 이 가운데 30개의 영상을 선택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숲 영상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사실 이 나무는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주식시장에서 수시로 변화하는 숫자를 영상에 끌어들였다. 이 객관적인 숫자들은 나무와 숲을 이루며 우리 일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숫자들이 실은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주식시장이 하락세일 때는 푸른색으로, 상승세일 때는 붉은빛으로 나타난다. 실시간 주식시장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뮌은 부부 작가다. 공대를 졸업한 최문선, 그리고 조소를 전공한 김민선은 '뮌'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작업을 펼친다. 완성도 높은 예술적 골격 속에 첨단 기술이 흐르는 이유다.
윤규홍 아트디렉터는 "짧은 단편 영화들이 하나의 옴니버스 영화로 완성되는 것처럼, 극적인 삶의 변주로 다루어지는 텍스트 속의 가상현실은 그것이 다소의 과장이 있더라도 삶의 진실을 찾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전시는 갤러리분도에서 11월 5일까지 열린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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