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채나미와 운조루

연탄 한장 따뜻한 밥 한그릇은 절실한 이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채나미는 탤런트 이름도 아니고 K팝 가수 이름도 아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쌀통 이름이다. '채우고 나누는 사랑의 쌀통'에게 스타 이름과 비슷한 채나미란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채나미란 큰 쌀통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부근에 있는 이수성결교회 정문에 있다.

채나미 프로그램은 옛날 교회에서 성미(誠米)를 모을 때의 방식을 원용한 것이다. 끼니 때마다 한두 숟갈의 쌀을 모았다가 주일날 교회에 갖고 가면 교회는 그걸 주변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채나미 쌀은 채우는 사람도, 퍼가는 사람도 누구에게 알리지 않으며 알릴 필요도 없다. 다만 하나님의 천국 장부에 기록될 뿐이다.

쌀을 채우는 사람은 성서의 가르침대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그렇게 하면 되고, 퍼가는 이는 감사한 마음으로 필요한 만큼 가져가면 된다. 당초에는 한 달에 쌀 두 가마면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소문이 퍼져 요즘은 예닐곱 가마가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저축은행 비리처럼 천문학적 돈이 개인의 검은 복장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한 끼의 밥이 없어 굶는 사람의 수는 의외로 많다.

채나미 운동은 교인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결혼'출산'생일'입학'회갑 등 가정 경사의 경비를 줄여 채나미 성금을 내는가 하면 쌀을 가지고 가는 이들도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놓고 가기도 한다. 교회 측은 누가 얼마를 가져가더라도 제한하지 않지만 쌀을 가져가는 이들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두 봉투만 가져간다.

최근 교통사고로 숨진 철가방 기부천사 김우수(54) 님의 생전 동영상을 보면 반 평짜리 고시원 쪽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한 달 70만원 수입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해온 그는 쌀밥이 먹고 싶었지만 매 끼니를 빵조각이나 라면으로 때웠다고 한다.

무상급식이란 소리는 먹고살만한 부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겐 애초부터 당치 않는 헛소리다. 보편적 복지는 연탄 한 장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절실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늦여름 남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조루에 들렀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는 조선조 영조 때 삼수 부사를 지낸 유이주(1726~ 1796)가 지은 가옥의 사랑채인데 요즘은 집 전체를 운조루라 부른다. 문화유산답사팀들의 구례지역 필수 코스인 운조루는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통나무 쌀뒤주와 난쟁이 굴뚝이 있어 이것이 오가는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 뒤주 아래 쌀을 퍼내는 구멍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다. 이 집 식구가 아닌 이웃사람들도 뒤주의 쌀을 마음대로 퍼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운조루 주인은 집 앞 구만들 2만여 평의 논에서 쌀 200여 가마를 추수하여 그 중 36가마를 끼니 마련이 어려운 이웃에 나눠주었다. 유이주는 300여 년 전에 '무상급식'을 그렇게 실천했지만 농토가 있고 밥술깨나 먹는 농민들은 그 집 쌀을 퍼가지 않았다. 이것이 바람직한 무상급식이다.

또 운조루에는 굴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굴뚝의 키는 난쟁이다. 밥 짓는 연기가 담을 넘어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굶고 있는 이웃들이 부잣집의 밥 짓는 연기를 보면 적개심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인은 뒤주의 쌀이 그믐이 될 때까지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며느리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 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나와 남도여행을 함께한 도반들은 운조루 앞 정자에 올라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운조루 주인의 이웃사랑이란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버너에 불을 피우지 않았다. 우리는 굴뚝의 키를 낮춘 게 아니라 라면 끓이는 냄새조차 날아가지 못하도록 부엌 자체를 없앤 격이 됐다. 아침에 먹다남은 식은밥과 2, 3일 끌고 다닌 시어 빠진 김장김치로 '마음의 점'(點心)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운조루 주인 같은 이가 서울시장이 되고 교육감이 되었으면….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