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기저귀
부모님도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나 또한 딸 둘에다 시집간 여식마저 줄줄이 딸을 생산하였다. 한 번씩 모일 때면 와삭와삭 치맛바람은 방 안까지 일렁인다.
일 년 전 장가든 아들이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고추를 단 손자가 고고지성(呱呱之聲)을 터뜨렸다. 여명이 열리기 전 고요한 산사에 예불을 올리는 목탁소리가 이보다 더 청아할 수 있을까, 새벽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이보다 더 맑을 수 있을까.
보는 사람마다 할아버지 닮았다는 말에 기분은 괜찮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나처럼 짧고 몽땅하면 원망의 화살이 얼마나 따가울지. 겨우 한 칠 지난 준서의 몽실몽실한 다리에 쭉쭉이를 하니 온몸을 뒤틀며 시원스런 몸동작으로 화답한다. '할배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표정으로.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잔다. 똥오줌을 자주 싼다. 내 자식 기저귀 갈아본 기억이 아슴푸레한데, 손자에게는 스스럼없이 손이 간다. 배설물이 밉지 않다.
몇 년 전, 어머님 편찮아 누우셨을 때 기저귀와 전쟁을 벌였다. 채우기 바쁘게 갈기갈기 찢어댔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새로이 기저귀를 찼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대소변을 몸소 해결치 못했으니 자식에게 얼마나 미안해하셨을까. 가끔 기저귀를 갈아 드리면서 얼굴은 번데기상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손자의 기저귀에는 거리낌이 없으니…. 극명한 양면성에 얼굴이 뜨겁다.
나 역시 기저귀를 안 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잖은가.
박기옥(대구 북구 산격동)
♥수필2-가을맞이
가을이 점점 짙어가는 것을 느끼며 가을 단풍에 마음을 담으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무작정 산으로 향했다. 한적한 시골에서 자라 숱한 자연과 어울려 다녔지만 그때는 자연이 주는 고귀한 사랑의 의미를 가슴에 담을 만한 생활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계절의 변화와 그때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며 수성못 가로수 길을 지나는 길에 잠시 내려 공원 의자에 앉아 옛 추억을 그려본다.
수성못은 우리 세대의 추억이고 낭만이며 대구시민의 휴식 공간이었다. 지금은 빌딩 네온사인 불빛이 호수의 물밑에 반사되고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며 붉게 타오르는 낙엽에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이 보였다. 호반의 수양버들 늘어진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가을에 흠뻑 취해본다.
그리고 차에 올라 앞산 길로 향했다. 밀리는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달릴 수 있었다. 도시의 야경을 잠깐 감상하며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선짓국 집에 들러 허기를 달래고 두류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운동하는 다양한 사람들로 늦은 시간임에도 붐볐다.
가을을 맞이하며 그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나선 나들이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쌀쌀한 날씨에 깊어가는 가을! 물들어가는 낙엽을 보면서 지난날을 추억하고 앞으로 갈 길을 물어본 가을날이었다.
이진식(대구 달서구 본리동)
♥시-꼬마아가씨
수목원 들머리에 빨강 리본 머리핀을 한 꼬마아가씨
총총거리며 엄마 손 잡고 올라온다.
삐삐머리에 빨강리본 머리핀만 아니면
영락없는 아가씨, 꼬마아가씨
꽃문양 스타킹 신고 까만 구두에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첫사랑이 촐랑대면서 오는 것 같아
수목원 나무들이 그녀 맞아 박수 치듯
바람이 일제히 흔들어댄다
아저씨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꼬마아가씨는 촐랑촐랑
가을 잠자리 잡으러 뛰어다닌다.
양 갈래 삐삐머리는 하늘 높이 출렁이고
고추잠자리는 더 높이 날아오르고
나무들은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데
꼬마아가씨 지휘에 수목원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진다.
묵은 지 같은 첫사랑 추억
싱그런 가을 하늘을 수놓게 해 준 꼬마아가씨
덕분에 하루가 행복했다.
문성권(대구 수성구 지산동)
♥시2-할미와 손자
할미는 석양을 바라보고
손자는 매미 소리 나는 나무를 본다.
나무 무늬 긴 의자에 기대어
바라보는 방향 서로 같지만
보이는 것 다르다네.
할미는 가는 세월 잡고 싶고
손자는 매미를 잡고 싶네.
석양은 담 넘어가듯
서산을 훌쩍 뛰어넘었고
나무그늘 짙어지자 매미 잠들었으니
아무것도 잡지 못했네.
솜털 같은 구름 억새에 걸린 듯
가을하늘 내려앉더니
시나브로 저물어 가네.
그림자 없는 사람 되어가네
억새 같은 손잡고 따라오더니
손자도 멀어져가네
그 간격이 육십갑자네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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