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회사·집에서도 울긋불긋…아웃도어 '국민복' 되다

과거엔 중년 아저씨들이나 입던 패션이었던 아웃도어 의류가 요즘은 여성과 학생들에게까지도 사랑받는 패션니스타들의
과거엔 중년 아저씨들이나 입던 패션이었던 아웃도어 의류가 요즘은 여성과 학생들에게까지도 사랑받는 패션니스타들의 '핫(hot)'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아웃도어 의류는 유명 브랜드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으려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은 예사일 정도로 고가이지만, 이제는 일상복으로도 흔히 활용될 정도다.
아웃도어 의류는 유명 브랜드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으려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은 예사일 정도로 고가이지만, 이제는 일상복으로도 흔히 활용될 정도다.

요즘 산은 사시사철 울긋불긋하다.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의류를 갖춰 입고 산을 찾는 인파들로 연중 내내 알록달록 단풍이 든 모습이다. 이런 광경은 비단 야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에서도 화려한 아웃도어룩을 입은 사람들을 어렵잖게 만나볼 수 있다. 편리하고 기능성을 갖춘데다 디자인까지 3박자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과거엔 중년 아저씨들이나 입던 패션이었던 아웃도어 의류가 요즘은 여성과 학생들에게까지도 사랑받는 패션으로 거듭난 것이다. 바야흐로 '아웃도어 국민복 시대'다!

◆국민복으로 정착된 아웃도어

얼마전 중국 여행을 다녀온 회사원 김주형(38) 씨는 상하이공항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국에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순간, 공항이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순식간에 물들어버린 것. 김 씨는 "요즘 아웃도어룩 열풍이란 사실을 피부로 체감한 순간"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공항이었지만 한국인들 외에는 이렇게 단체로 아웃도어룩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는 볼 수가 없어 참 희한한 광경으로 뇌리에 남았다"고 했다.

요즘 한국 사람들 중 아웃도어 의류 한 벌쯤 안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오르는 등산 인구만 무려 1천8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람만큼 등산을 좋아하는 민족이 잘 없다고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레저 인구가 급증한 것도 아웃도어 시장 확대에 큰 몫을 했다. MTB(산악자전거)나 낚시, 캠핑 등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웃도어 의류 수요 역시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패셔니스타로 자칭하며 지금껏 아웃도어 의류는 자신에게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직장인 이모(28'여) 씨는 최근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웃도어 의류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야외로 나가는 일이 잦아지는데다 함께 즐기는 회원들 대다수가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나타나는 까닭에 나 역시 분위기를 맞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중국 황산 관광을 다녀온 주부 김모(54) 씨는 여행을 앞두고 남편을 조르고 졸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국내 유명 브랜드의 아웃도어 의류를 구매했다. 재킷과 바지, 티셔츠에 모자까지 사는 돈이 80여만원이니 중국 한번 다녀오는 관광비와 맞먹을 정도로 출혈이 컸다. 하지만 김 씨는 "이번만은 정말 제대로 입고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동기생들과의 여행 때는 자신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마트표' 아웃도어를 입고 갔는데 친구들은 너도나도 유명 브랜드 상표를 떡하니 내세우고 나타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이다.

아웃도어 시장이 워낙 급속히 확장하다 보니 그 속에서도 급이 나뉘고 있다. 비싼 백화점표와 브랜드는 덜 알려졌지만 저렴한 가격이 장점인 마트표 브랜드로 나뉘고 있는 것. 기능성이나 일부 소재의 미묘한 차이가 가격차를 벌여놓는데다, 유명 모델이 광고하는 알려진 브랜드냐에 따라 가격차가 또 한번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0여 개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지만 시장은 상위 10개 고가 브랜드가 대부분 잠식하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비싼 가격! 부르는 게 값?

아웃도어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동네 앞산을 갈 때도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어텍스 재킷에 방풍'방수'통기 성능을 갖춘 바지를 입고 길을 나선다. 오를 산은 동네 뒷산인데 복장은 에베레스트 원정대 복장인 셈이다. 박장호(49) 씨는 "산을 가보면 마치 아웃도어룩 브랜드 경연장 같다"며 "서로 뒤지지 않을세라 등산화에, 재킷에, 모자까지 브랜드 로고가 다 박혀 있는데 너도나도 그렇게 입다 보니 왠지 평범한 점퍼 차림에 청바지라도 입을라치면 괜스레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IMF 외환위기로 대거 쏟아진 해직자들이 산을 찾아 지친 마음을 달래며 시간을 보냈지만, 요즘은 옷값 무서워 직장을 잃어도 산에 가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아웃도어의 가장 큰 단점은 '비싼 가격'이다. 고어텍스 소재 재킷 하나에만 40만원에서 비싸게는 70만원을 넘어서기도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갖춰 입으려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 것은 예사다.

물론 이런 비싼 가격에는 '기능성'이 큰 몫을 한다. 싼게 비지떡이고 비싼 것이 값어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이 비싼 가격에는 업체의 상술도 숨어있다.

가령 70만원대 고어텍스 등산 재킷의 원가구조를 한번 알아보자. 고어텍스 원단이 4.5야드가량이 사용되는데 16만~2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전체 재킷가격의 25% 정도를 고어텍스 원단비가 차지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공임과 부자재, 운송경비 등을 포함하면 생산 원가는 23만~27만원 수준이 된다. 그리고 백화점 수수료가 30%를 차지하다 보니 20만원 정도를 지불하게 되고, 업체가 가져가는 이윤은 35% 정도로 25만원 선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 업체들은 '최첨단 기능성'을 강조하면서 상품의 가격을 한껏 더 끌어올린다. '고어텍스' 제품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가 않다. 두 겹 레이어(layer) 소재에서 세 겹 레이어, XCR, 그리고 팩라이트 소재까지 다양하다. 가격도 하늘과 땅 차이다. 고어텍스 두 겹 레이어와 팩라이트 소재 재킷 가격은 30만원대 초반인데 비해, 세 겹 레이어 소재는 52만원부터 XCR와 프로셀 소재로 만든 재킷은 60만원을 넘어서는 고가로 분류된다.

인기 연예인을 동원한 고가 마케팅도 가격 거품 형성에 한몫을 하고 있다. 코오롱스포츠의 경우 인기가수 이승기를 앞세운 고어텍스 재킷을 80만원대에, K2는 인기배우 현빈을 앞세운 재킷을 70만원대에 판매했다. 4, 5년 전까지 대부분의 고어텍스 재킷류는 20만~30만원대였지만 어느 순간 급속도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간단한 야외활동엔 기능성 필요없어

야외활동에는 가볍고,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의 제품이 좋다. 또 먼지가 묻거나 넘어지는 사고 등을 대비해 표면이 매끄럽고 외부와 마찰에도 잘 견디는 재질이어야 한다. 땀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아서 빨리 마르고 수증기를 막아주는 기능은 필수다.

하지만 이를 위해 꼭 고가의 기능성 제품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을 가는 1천800만 명 중 고기능성 등산복이 필요한 인구는 고작해야 10만 명 안팎"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실 집 근처 산을 오르는 가벼운 산행이라면 기능성 제품을 완벽하게 갖출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잘 마르는 기능이 있는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가볍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윈드스토퍼 또는 나일론 스판덱스 재킷을 입으면 가격 부담을 절반 이상 낮출 수 있다. 윈드스토퍼는 땀과 열을 밖으로 배출하는 투습성과 외부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성이 뛰어나지만 가격은 고어텍스의 절반 수준이다. 나일론 스판덱스 역시 투습성과 스트레치성, 그리고 방풍성까지 갖췄지만 가격은 고어텍스에 비해 수십만원 이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 등산화 역시 고기능성 제품보다는 트레킹용이나 가벼운 경등산화 정도를 고르면 한결 가격 부담이 줄어든다.

기능성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수수료율이 높은 백화점보다는 아울렛이나 상설할인점 등을 통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비용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또 해외 유명브랜드 제품의 경우 국내 판매가와 해외 판매가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어 인터넷 구매대행을 활용하면 조금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경로도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사실 우리나라 아웃도어의 성장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유행에 민감한 따라하기 심리,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은 체면 의식이 더 큰 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며 "자신에게 맞는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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