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를 쓰기만 하다, 직접 신문배달에 나섰다. 우리가 만든 신문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해지는구나!'
펜과 수첩을 던졌다. 손엔 신문 뭉치가 한 아름. 발로 걷고 뛴다. 이동할 땐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 독자와 대면하며 신문을 직접 전하기도 하고, 대문이나 현관문 밑으로 넣기도 하고, 창문 사이로 끼워넣기도 한다.
대구시 중구 향촌동 골목에서 대구백화점 본점 엘스컬레이터로, 먹자골목에서 동성로 한복판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4층은 땀방울이 맺히게 만든다. 힘겨움의 연속이다. '젊은 사람으로 배달원이 바뀌었나요?'란 말에 살짝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다방에서 건네주는 물 한잔, 약국에서 전해준 '쌍화탕'은 우리사회에 인정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고생하는 배달원과 독자와의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생업으로 신문배달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겠지만, 생각을 바꾸면 운동량이 상당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듯했다.
신문배달의 기억은 아련하게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는 1980년대 후반에 1년 가까이 신문을 돌렸다. 당시 월급은 2만5천원. 그 돈도 모자라 신문을 통째로 들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팔아먹은 바람에 신문지국 총무가 집으로 들이닥쳐 부모님에게 변상해 갔던 '범죄의 추억'(?)까지 고스란히 떠오른다.
26년이 지난 2011년 10월 17일 신문기자로서 또다시 신문배달 체험에 나섰다. 다행히 단 하루다. 그것도 반나절만 고생하면 된다. 기꺼이 몸을 던졌다. 그 당시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물론 그전부터 지국의 갖가지 어려움은 이미 들어온 터였다. 일단 배달원 월급부터 비교하자면 12배가량 뛰었다. 배달원도 당시엔 주로 초등학교 상급생 또는 중학생이었는데 이젠 전문 청년 배달원 또는 주부, 실버세대다. 배달원 모집은 더 힘들어졌다. 특히 석간은 얼굴이 팔린다는 이유로 더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신문배달의 현장을 한번 경험해보자!
#1. 오전 11시 도착, 교육
대구 중심가인 중구 성내 1'2'3동 일대에 2천여 부를 배달하고 있는 종로지국을 찾았다. 행정동은 3개지만 법정동은 장관동'공평동'수동'하서동 등 30개 동에 이르는 곳이다. 32년간 신문지국을 경영해온 박승환 지국장이 기자를 반긴다. 그리고 이내 시장상황에 대한 설명과 신문배달에 필요한 교육을 해줬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1도 1사'(1개 도에 1개 신문사로 통폐합 운영) 체제에서는 정말 신문의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배달원 구하기도 용이했고, 집집마다 매일신문을 안 보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에 배달도 신이 났습니다. 그 당시 6개 지국으로 나뉘어 배달하던 구역이 이젠 종로지국 하나로 통폐합됐습니다. 신문 배달 부수도 다소 줄었고, 신문값 받기도 힘듭니다."
박 지국장의 한탄 섞인 말에 공감이 갔다. 신매체(영상 및 인터넷, SNS 등)의 등장으로 신문산업이 다소 위축되면서 신문사는 물론 지국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고, 오늘 할 일은 해야 한다. 박 지국장은 오늘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먼저 신문이 도착함과 동시에 속지(광고 전단지) 넣는 작업을 하고, 이후 향촌동 일대에 50여 부를 돌리고 나서, 다시 동성로 빌딩숲에 50여 부를 배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물론 기존의 배달원과 함께 움직이도록 해 배달 주소지를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2. 정오에 짜장면 한 그릇 뚝딱!
그래도 점심은 주겠지. 늦은 아침식사로 설렁탕을 먹었지만 혹시나 배가 고플까 지국장이 시켜준 짜장면을 젊은 배달원들과 함께 5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정말 빨랐다. '번개 짜장면'은 주문한 지 3분 만에 도착했고, 이를 먹는 데는 5분. 10분 안에 점심 해결이다. 짜장면을 먹으며 뒤를 돌아보니 섬뜩했다.
'판매는 전쟁이다' '확장은 생명이다' '결배 제로작전', 배달인의 신조 '신속'정확'친절' 등 지국의 생존경쟁과 관련된 문구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이를 보니 왠지 짜장면도 전투적으로 더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군대에 다시 입대한 기분도 살짝 들었다.
짜장면을 해치운 시각은 낮 12시 20분. 하지만 신문을 가득 실은 트럭은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성서에 있는 윤전제작국에서 신문 쇄출이 늦어졌나 보다. 10명의 배달원들은 익숙한지 연신 농담을 한다. "곧 도착한다고 하니까 좀 쉬고 있자고." "중국집 주인이 이제 출발했다고 하는 말과 같지." "오늘 기사가 늦게 떴나?" 등.
#3. 낮 12시 50분, 신문 뭉치 도착
많이 기다렸다. 드디어 신문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이내 20뭉치(1뭉치 100부)가 종로지국 앞에 떨어졌다. 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속지를 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박 지국장이 시범을 보여줬다. 먼저 신문을 20부 단위로 나눈 뒤, 신문 첫장을 넘기면서 그 속에 속지를 넣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숙달된 배달원들은 20부에 속지를 넣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는 듯했다. 이들이 20부 작업을 두 차례 끝내는 동안 기자는 한 번도 끝내지 못했다. 골무나 장갑을 꼈지만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영 속도가 느렸다.
20부씩 세 번을 해서 60부를 다 끝낸 10명의 배달원들은 배달구역으로 나갔다. 10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고! 참 빠르네! 난 왜 이렇까?"
#4. 오후 1시, 향촌동 일대 신문배달 시작
1차 배달 파트너는 지국 경영까지 40년 경력의 베테랑 박윤식(73'지국 부장) 어르신. 그분과 함께 향촌동 일대에 50여 부를 돌리는 일이었다. 비교적 평지이고 쉬운 코스라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3, 4층 건물에 신문 1부를 돌리기 위해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은 숨쉬기를 힘들게 만들었다.
첫 배달지는 금성유리, 두 번째는 신태반점, 세 번째는 대안장여관이었다. 의외로 정이 넘쳤다. 신문을 기다리고 있는 가게 주인들도 많았으며, 항상 정해진 장소에 신문을 놓고 가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소파, 책상, 창문 옆 등 항상 신문을 놔두는 정해진 장소가 있었다. 배달원과 구독자의 묵계(默契)였다.
박 부장은 기자에게 노하우를 하나씩 전수하면서 실버 신문배달의 장점을 역설했다. "이보다 더 좋은 노인 아르바이트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 간 정도 느낄 수 있고, 운동도 되고요.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배달하고, 일요일에도 그 시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나와 같은 운동을 합니다. 건강을 지켜주는 최고 직업이죠." 실제 그분에게는 그런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구독자들이 반겨줬고, 그 역시 일상적인 안부 수준을 넘어서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쉬운 코스라지만 경상감영공원 옆 중앙상가는 나름 힘들었다. 계단을 통해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신문 10여 부를 배달했다. 그럭저럭 할 만했다.
#5. 오후 2시. 동성로에 배달
'허걱!' 길 하나 건너니 향촌동과는 천양지차다. 온통 빌딩숲이다. 마침 미도빌딩 앞에서 역시 실버 배달원 박판조(73'지국 부장) 어르신이 오토바이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쉽지 않은 곳이라고 미리 알려줬다. 그리고 이내 기자와 함께 첫 행선지로 우리은행 건물로 들어갔다. 4부를 배달하기 위해 5층부터 시작해 4층, 3층, 1층까지 다녔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갈 때 한 번만 탔다. "아하! 이래서 도심이 힘들구나! 고층 아파트는 오죽할까?"
신문배달원에게는 도심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아닌 시간을 잡아먹는 기계였다. 미도빌딩에서는 12부를 배달하는데 무려 15분이나 걸렸다. 힘들었다. 14층까지 올라가는데 각 층마다 서는 바람에 2, 3분이 걸리는 것은 예사다. 그리고 3, 4층을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는 짜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아차!'하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1, 2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간신히 미도빌딩이 끝나자 바로 옆 교보생명 빌딩으로 향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 6대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6부를 금방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한결 편하고 빨랐다. 그리고 한일극장으로 향했다. 마침 10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을 만났다. 그래서 10층까지 가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접 전했다. 재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대구백화점 본점. 참 이상했다. 화려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신문을 들고 올라가는 기분이. 백화점은 층마다 배달하려면 엘리베이터보다는 에스컬레이터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나마 젊은 여성들의 화려한 옷차림이 눈요깃거리가 되어 육체적 피로를 다소 달래주는 것이 위안이었다.
#6. 오후 3시. 다시 종로지국으로
30분 정도 더 신문을 배달해야 했지만 시간관계상 오후 3시에 마치고 종로지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박 지국장이 수고했다며 '고급 커피'를 줬다. "생각보다 도심 배달이 힘드네요. 전 엘리베이터가 오히려 더 힘들게 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현프리몰 지하상가도 내려갔다 오니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고요. 하여간 기자로서 좋은 경험 했고, 더 좋은 기사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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