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대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21일 오후 3시 고령군 고령읍 장기리 한 공장(2천300㎡) 안. 몇몇 직원들이 불편한 몸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상체가 한쪽으로 뒤틀린 영욱(가명'35) 씨는 기우뚱거리며 수레를 끌었다. 바로 옆 정호(가명'42) 씨는 세탁물을 가슴에 가득 안고서 절뚝이는 다리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장애를 지닌 직원들은 힘든 내색 없이 순한 표정으로 맡은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법이 정한 의무고용도 기피하는 현실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직원의 절반 가까이 고용한 회사가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고령의 두호실업. 이곳 직원 70여 명 가운데 뇌성마비, 정신지체장애인은 22명이고 70세 전후의 노인도 15명이나 된다. 장애 1급에서 3급 사이의 중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일하는 이 공장에선 시트, 이불, 환자 옷, 타월 등 병원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처리한다.
◆장애인 작업장의 애환
두호실업의 이진구(65) 대표가 장애인을 고용하게 된 데는 부인인 김순임(60) 씨의 영향이 컸다. 김 씨는 라이온스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한 장애인시설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직업교육을 마친 장애인들이 갈 데가 없는 것을 알고 선뜻 공장 일을 맡겨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것이 10년 전인 2000년대 초였다.
하나 둘 장애인 직원이 늘면서 소문이 났다. 장애인 부모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공장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고령군에서도 공공근로가 끝난 노인들을 이곳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젊은 비장애인을 고용하면 35명 정도면 충분하지만 장애인들과 노인들은 생산력이 떨어져 그 만큼 직원 수는 늘어왔다"며 "여기가 아니면 이분들이 어디서 일을 하겠냐는 생각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좋은 뜻에서 장애인과 고령의 노인을 고용했지만 번번이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다.
출퇴근부터 쉽지 않았다. 기숙사에 있는 5명 이외 장애인들은 모두 출퇴근을 하는데 길을 익히는 데만 열흘이 넘게 걸렸다. 세탁물을 나르고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지만 몸에 익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들었다. 지능과 일에 따라 한 달에서 몇 년까지 걸리기도 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애틋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더라"며 "비장애인이 '일하는 양에 비해 장애인과 봉급 차이가 적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고 괜히 시비를 걸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가족들이 장애인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장애인 동생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신용불량자로 만든 누나가 동생을 공장에 맡기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실업급여를 타려고 해고를 요구하기도 했어요. 어떤 형제들은 해마다 돌아가면서 장애인 동생의 월급을 가져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장애인, 노인이 어우러진 일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보람이 있었기에 여전히 장애인, 노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대표의 부인 김 씨는 "어떤 부모들은 고맙다며 직접 농사를 지은 사과상자를 놓고 가기도 한다"며 "특히 장애인들이 일을 하면서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 잘 걷지도 못하다가 똑바로 걷게 되고 뛰기도 할 만큼 몸이 좋아지고 서로 장난을 칠 정도로 사회성도 커지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앞으로가 문제다.
이 대표는 "현재 장애인과 노인에게 평균 85만원을 보수로 지급하는데 이는 최저임금제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생산력도 떨어지고 본인들도 최저임금을 못 받더라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대로라면 더는 장애인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지방고용노동청에 신청을 하면 최저임금에 못 미치더라도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장애인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대표는 노무사를 통해 장애인 증명서류, 업무성격 등 증빙서류를 준비해 고용노동청에 신청서를 접수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가 떨어지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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