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 26일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박원순펀드'를 개설했다. '박원순펀드'는 개설 52시간만에 서울시장 법정 선거비용인 38억8천500만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당초 30일까지 모금할 예정이었지만 일찌감치 목표 금액이 달성되는 바람에 모금은 조기 마감됐다.
'박원순펀드'는 소셜펀딩(social funding)의 한 사례로 꼽힌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도 불리는 소셜펀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프로젝트 등을 알리고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말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십시일반 돈을 모금하는 소셜펀딩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단순 모금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새로운 후원 문화로 떠오른 소셜펀딩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당신의 아이디어를 사겠소"
지난해 말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스콧 윌슨은 애플의 MP3플레이어 아이팟 나노용 시곗줄을 고안했다. 그가 고안한 시곗줄을 아이팟 나노에 연결하면 손목시계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는 개발비를 모으기 위해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공개한 뒤 상품화할 수 있도록 투자금을 달라고 호소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순식간에 1만3천여 명의 누리꾼들이 목표 금액(1만5천 달러)의 60배가 넘는 94만여달러를 모아줬다.
지난해 중순에는 사용자 정보가 많이 노출되는 페이스북의 문제점을 간파한 미국 뉴욕대 학생들이 개인정보를 통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디아스포라'를 기획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개발비가 없었던 이들은 소셜펀딩사이트인 '킥스타터'에 아이디어를 올려 2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또 아이폰4가 막 출시된 지난해 9월 미국에 거주하는 두 남성은 아이폰4를 활용한 아이디어 제품인 미니 삼각대를 고안했다. 미니 삼각대에 아이폰4를 올려 놓으면 TV나 탁상시계로 활용할 수 있다. 이들도 '킥스타터'를 통해 10만달러가 넘는 개발비를 모았다.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아이폰용 미니 삼각대는 예약 판매 사이트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도 소셜펀딩으로 필요한 자금을 모은 사례가 많다. 인권문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영화 '시선 너머'(올 4월 개봉).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배우 김현주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이 영화의 제작비는 소셜펀딩을 통해 조달됐다. 올 5월 발매된 들국화 25주년 리메이크 앨범과 올 6월 개봉된 영화 '굿바이 보이'도 소셜펀딩 덕분에 세상에 나왔으며, 이원국 발레단은 발레 '돈키호테' 공연에 필요한 의상제작비 500만원을 소셜펀딩을 통해 마련했다.
◆전문사이트도 등장
소셜펀딩 열기가 확산되면서 소셜펀딩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이트들도 등장했다. 올해 '디스이즈트루스토리'를 비롯해 '콘크리트''펀듀''텀블벅''업스타트' 등이 잇따라 생겨났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소셜펀딩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앞선 2, 3년 전 소셜펀딩사이트가 출현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셜펀딩사이트 '킥스타터'는 2009년 설립된 이후 매년 4배가 넘는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킥스타터'는 예술단체'개인 등이 모금을 요청한 1만626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총 7천500만달러의 자금지원을 이끌어냈다.
국내 전문사이트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소셜펀딩 활동을 벌이고 있다. '텀블벅'은 공무원에게 책(참여와 소통의 정부 2.0) 선물하기, 개인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우주 환경 테스트 장치 만들기 등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펀듀'는 연극 '완득이'와 영화 '바다'의 제작비를 조달했으며 '콘크리트'는 젊은 인디밴드를 후원하는 쪽으로 사업을 특화하고 있다.
◆공익 실현 수단으로 진화
소셜펀딩이 단순 투자를 넘어 나눔과 공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펀듀'와 ㈜비빔인은 소셜펀딩을 통해 사회환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후원자들이 '비빔 인 서울' 공연 티켓을 구매하면 20매 당 5매의 티켓을 문화소외 청소년들 무료 초청에 사용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 후원자들에게는 티켓 할인 특혜와 함께 후원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이 주어진다. 한편 '비빔 인 서울'은 비보이와 한국무용, 비트박스와 판소리 등을 신나게 버무린 퓨전 공연으로 다음 달 11일부터 12월 11일까지 양재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올여름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들리나요'(Do you hear?)라는 제목의 아리랑 광고를 게재한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는 다음 달 런던 중심가에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광장에서 아리랑 광고 영상을 상영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소셜펀딩을 추진하고 있다. 또 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는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 필요한 식사비 5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셜펀딩 문을 두드렸다. 올 8월에는 싱글맘들이 모여 유기농 컵케이크를 만드는 예비 사회적기업인 '용감한 컵케이크'가 소셜펀딩을 통해 107만5천원을 모금한 뒤 서울대어린이병원 심장과 병동에 컵케이크를 보냈다.
◆사회적 의미와 가치
소셜펀딩의 등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셜펀딩사이트에 프로젝트가 게시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확산되면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영국의 BBC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계를 맺고 이를 촉진시킬 줄 아는 페이스북 세대의 등장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셜펀딩은 창업 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가들의 실험정신을 북돋우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재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청년 창업자와 예술가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주는 역할을 소셜펀딩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 소셜펀딩 투자자들에게는 꿈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재능을 꽃피우는 데 일조했다는 자긍심을 준다. 이에 대해 임현나 디스이즈투르스토리 대표는 "소셜펀딩에는 누군가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커뮤니티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소셜펀딩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 발굴 및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또 후원자들에게는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콘텐츠 발굴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소셜펀딩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감동도 있다. 최근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장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던 예비부부가 소셜펀딩으로 비용을 마련한 뒤 도움을 준 누리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직접 만든 도시락과 앨범을 선물했다는 감동 스토리가 한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줬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소셜펀딩이 가야 할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소셜펀딩이 프로젝트 실현을 도울 수 있지만 성공까지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또 투자금만 챙기고 잠적하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소셜펀딩을 추진할 경우 꼼꼼한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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