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Iron Man), 건우(建祐)'
인터뷰이(Interviewee)가 듣기 좋아하는 말로 대화의 장을 열었다. 이번 주 주인공은 국내 10종 경기의 지존(至尊), 김건우(31'문경시청 소속) 선수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빛낸 국내 육상스타 중 한 명으로 186㎝의 큰 키와 근육질의 건장한 몸에 실력까지 갖췄다. 한 가지 종목도 잘하기 힘든데 무려 10가지 종목을 다 잘하는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국내 무대를 벗어나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서고 싶은 꿈을 키워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10종 경기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10종 경기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10종 경기는 첫째 날 5종목, 둘째 날 5종목이 치러진다. 첫째 날 5종은 100m'멀리뛰기'포환던지기'높이뛰기'400m이며, 둘째 날 5종은 110m 허들'원반던지기'장대 높이뛰기'창던지기'1,500m다. 종목 면면을 보면 육상에서도 가장 힘든 경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철인 3종 경기(육상'수영'사이클)에 '철인'이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진정한 철인은 10종 경기다. 독자들을 위해 김건우 선수의 10종 개별종목에 대한 최고기록을 로 정리했다.
지금까지 김 선수가 세운 개인 최고기록은 7천860점 정도다. 모든 종목에서 최고의 기록을 세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김 선수가 10개 종목에서 모두 본인 최고기록을 세울 경우 8천300점 정도의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이는 세계 정상급 선수의 기록이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종 경기의 메달권은 8천400∼500점대였다.
국내 최고, 아시아 최정상권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김 선수를 이달 19일 올림픽공원 내 한국체육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보기만 해도 듬직해 보이는 대한민국 최고 건장남였다. 자신이 하고픈 말도 조리 있게 잘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뚜렷했다.
◆고 3…인생의 첫 터닝포인트
'대학은 가야 하는데….'
김건우는 원래 10종 경기 선수가 아니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 남부초교와 포항 동지중을 거쳐 경북체고에 입학해 높이뛰기 선수로 뛰다 기록이 신통치 않아 세단뛰기 선수로 변신했지만 역시나 별반 주목받지 못했다. 육상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조차 힘든 현실이었다.
그렇게 부모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성적이 부진하던 차에 10종 경기로의 전환을 도와준 은인이 있었다. 바로 10종 경기 선수 출신인 이광익 코치다. 그는 김 선수의 고3 여름방학 때 10종 경기 선수로의 탈바꿈을 도왔다.
그것이 적중했다. 음식 재료 한 가지 한 가지만 보면 별로지만 10가지 재료를 섞어놓으니 아주 훌륭한 음식으로 재탄생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 선수는 10개 종목별로 고루 성적을 거두며 단숨에 고교 최강자로 우뚝 섰다.
그는 그해 가을에 열린 추계 중고선수권대회 10종 경기에 첫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한국체대 스카우트는 그를 단번에 특기생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문체부 장관기 대회에서 또 금메달을 목에 걸며 고교 최고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이것이 10종 경기에 김건우가 혜성처럼 등장한 시나리오다.
"사실 제 절친(절친한 친구)이었던 장대 높이뛰기 김준형 선수가 당시 한국체대에 함께 입학하자고 저를 많이 다독거려줬고, 저 역시 체고에 입학하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피땀 흘려 노력했습니다. 10종 경기로 종목을 바꾼 뒤 정해진 훈련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개인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체대 입학이라는 선물과 대한민국 최고의 10종 경기 선수로의 도약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김건우라는 인물은 국내에선 10종 경기의 달인이 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두 해를 제외하고는 9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5 동아시아 선수권대회 금메달, 2005 인천 아시아 선수권대회 은메달,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땄다.
◆꿈과 미래
"미국에서 1년간 선진 육상을 배우고 더 성장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김 선수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대회 기간 동안 세계적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국내와 사뭇 다른 육상 문화를 접했기 때문. 그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경우 출전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한국에 입국해 대회 전날까지 편안하게 일상을 소화한 뒤 경기가 시작될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목격했디.
또 김 선수는 모국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세계적으로 월등한 기량을 가진 10종 경기 선수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특히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트레이 하디와 함께 뜻 깊은 시간을 가진 것은 최대의 수확이었다.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은 제게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트레이 하디와 함께 대회 전에 영화도 보고 불고기도 함께 먹으면서 육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대회가 끝난 후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트레이 하디의 집도 방문했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1년간 육상을 배우기로 결심도 했습니다." 그는 육상선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미국에서 체계적인 훈련법을 배우고 해외 유명 선수와 코치와의 교류를 통해 두 단계 더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인터뷰 말미 김 선수는 자신의 이름에 빗댄 향후 목표 및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제 이름이 세울 건(建), 도울 우(祐)인데 이번에 미국에서 잘 배우고 온 뒤, 2012 런던 올림픽, 2013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겠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쯤엔 한국에서 세계적인 10종 경기 스타가 나오도록 후진 양성에 힘을 쏟겠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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