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난의 성지' 넘어 문화·건강·순례 쉼터로 거듭난다

20주년 맞은 한티성지 변신 모색

한티순교성지가 조성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한티순교성지가 조성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김종헌 한티순교성지 관장 신부
김종헌 한티순교성지 관장 신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 사이로 오솔길을 걸었다. 고요함 속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줬다. 성모상 앞에는 성스러운 기운이 은은하게 흐른다. 피정의 집 앞 억새 뒤편으로 확 뚫린 전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대구 근교에 이만한 별천지가 있을까.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대표적인 성지인 한티순교성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성지다. 한티순교성지가 조성된 지 20년이 되었다. 최근에 이를 기념해 감사미사와 음악제도 열렸다. 한티순교성지가 조성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한티순교성지는 어떤 곳?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에 자리한 한티순교성지는 대구에서 한티재 가는 길에 있다. 해발 600m의 깊은 산중에 있는 한티순교성지는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후에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들이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살았던 천주교 교우촌이다. 당시 워낙 깊은 산골이라 몸을 숨기기에 좋았던 것. 하지만, 오래전부터 교우들이 자리 잡아 대구와 영남교회의 터전이 되어왔다.

한티순교성지는 그 옛날 천주교 신자들의 최후 피난처였다. 을해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대구 인근의 산간벽지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한곳에 모여 살았는데, 이때 정착한 곳이 바로 한티였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후에도 수차례 관군의 습격을 받아 많은 신자가 순교하기도 했다. 첩첩산중 길을 가다 보면 수십 명의 순교자 묘가 산재해 있다.

일반적으로 순교 성지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세 가지는 순교자나 그의 가족들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묻혀야 하는 것. 김종헌 한티순교성지 관장 신부는 "한티순교성지는 이 세 가지조건에 모두 해당하는 완벽한 순교성지다"고 말했다. 한티순교성지는 1991년 9월 말에 조성됐고 이어 같은 해 10월에 피정의 집도 개원했다. 성지 규모는 12만5천620㎡ 규모로 상당히 크다. 한티순교성지는 순례자성당과 복원된 한티공소, 영성관, 피정의 집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티순교성지의 변신

한티순교성지는 지난해 8월 김 신부가 부임하면서 크고 작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먼저 단체 위주로 받던 피정의 집을 올해 2월부터 개인도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피정의 집은 120명 정도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단체만 신청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김 신부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피정의 집에 머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설계하기에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다양하고 색다른 피정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4박 5일 일정의 효소단식 프로그램이나 2박 3일 일정의 한티성지가 주관하는 대구 근교 성지순례 등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이 많다. 효소단식 프로그램은 식사 대신 효소를 먹으면서 오후에는 인근 온천을 이용할 수 있어 다이어트에 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한티성지에서는 1년에 4차례 정도 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또 대구 근교 성지 순례는 피정의 집에 머물면서 관덕정이나 신나무골, 계산성당, 성모당, 복자성당 등 대구 인근 성지를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문객을 위한 변신도 눈길을 끈다. 예전에는 개방하지 않던 초가집 형태의 한티공소를 전통찻집으로 만들어 누구나 와서 무료로 차를 마시게끔 했다. 또 넓은 터에 비해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을 고려해 군데군데 평상과 벤치를 설치해 순례객들이 쉬엄쉬엄 둘러보게끔 했다. 1년에 2차례 정도 음악회도 계획하고 있고 올해 안에 친교실을 리모델링해 북카페로 만들 방침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는 신자뿐 아니라 누구나 이곳에 와서 편하게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김 관장 신부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소식지 발간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번 달부터 '한티 소리'라는 월보도 발간해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한편 지난해 11월부터 주보도 꾸준히 펴내면서 방문객의 후기나 성지 행사 등을 알리는 것. 김 신부는 "대구 도심에서 30~40분만 오면 찾을 수 있는데다 이곳만큼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곳도 드물다"며 "대구 신자 7천 명을 비롯해 연간 5만 명 정도가 찾아오는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문의 054)975-5151.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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