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을 위한 특별 처방전] 기억력을 보호할 수 있을까

최근에 몇 번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가스레인지에 갈비탕을 올려놓고 그냥 나가서 자칫 대형화재가 날 뻔했다. 그 일 이후로 나 자신을 못 믿어서 항상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정신과 공부를 하는 아들까지 가세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라고 닦달을 한다. 현재 상태를 알아야 나중에 상태가 심해졌을 때 나빠지는 정도를 알 수 있다고 아예 환자 취급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뭔가를 자꾸 깜빡 까먹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런 기억력 감퇴를 '세월 탓'으로 돌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자'하면서도 걱정은 된다.

그러던 차에 미국 폭스뉴스 온라인 판에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여섯 가지 방법이 실려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읽어 봤는데 너무 일반적인 내용이어서 실망스러웠다. 간단히 소개하면 '운동을 열심히 하라.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라. 책을 많이 읽어라. 심장질환을 예방하라. 칫솔질을 잘하라. 복잡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져라' 등이었다.

복잡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책을 읽으라는 것 외에는 이제껏 건강을 위한 모든 글에 나와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고 기억력을 보호하기 위해 복잡한 직업을 가지라는 것도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단지 머리를 복잡하게 쓰는 기회를 가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우리 사회에 머리를 예전보다 안 쓰게 하는 편리한 기계가 몇 개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을 들 수 있다. 아는 길이건 모르는 길이건 운전대를 잡으면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세상이니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 또 노래방기기는 가사를 음미하고 외우며 노래하던 수고를 덜어주었다. 단지 기계음으로 치장된 틀 안에 보여주는 가사대로 노래를 부르면 되니 편리해진 것이다. 휴대전화 시대가 되면서 전화번호 외울 기회가 없어진 것도 머리를 안 쓰는데 일조한다. 하물며 이제는 집 전화번호 적는 난에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내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래도 머리를 쓰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예비치매환자 대상이 되고 보니 이제까지 쓰던 정도로는 안심이 안 된다. 그래서 전화번호 외우기, 머리에 있는 기억을 이용해서 길 찾기, 노래를 외워서 부르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외우기에 탄력이 붙으면 다음 단계로는 외국어에 도전을 해보고자 한다. 외국어 사용이 뇌를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킨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을 보호하고 싶으시다면 일단 머리 쓰는 습관부터 들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희경 영남대병원 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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