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을 틈탄 보험사들의 잇속 차리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취업과 고수익을 약속하며 대학생 보험설계사를 모집해 허위보험을 만들고 보험금 대납 등 불법 행위까지 요구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 울리는 보험사들
올해 초 전문대를 졸업한 이지희(가명'22) 씨는 보험설계사로 일한 지 3개월 만에 도망치듯 일을 그만뒀다. 취업을 고민하던 이 씨에게 매달 보험 계약 몇 건만 올리면 월급 못지않은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보험설계사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두 달간 교육을 받고 보험업에 뛰어든 그는 계약 실적에 대한 압박에 매일 시달렸다. 하는 수 없이 친척들을 통해 2, 3건의 계약을 올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 씨는 "보험사가 설계사를 모집할 때는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부풀려 놓고는 막상 실적이 저조하자 온갖 모진 소리를 쏟아냈다"고 푸념했다.
보험사들은 최근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설계사들을 집중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09년도 생명보험사 설계사 중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자는 2만7천653명으로 전체 설계사의 16.9%에 달했다. 이는 10년 전인 1999년 6.7%(1만6천253명)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
그러나 실제 인력 운용은 '일회용'에 그친다는 게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보험 영업에 서툴 수밖에 없는 20대 설계사들에게 실적을 강요하고, 견디지 못한 설계사들이 퇴사하면 바로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식이라는 것.
보험설계사 1만3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국내 한 생명보험사의 경우 지난해 5천600여 명이 일을 그만뒀고, 4천800여 명을 다시 충원했다. 신규 충원 인력 중 30% 이상이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병이었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는 것.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영업을 갓 시작한 20대 설계사들의 경우 친척이나 지인을 통해 2, 3건 정도 가입실적을 올린 뒤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불법 가입 강요에 빚더미만
보험설계사 일에 뛰어든 대학생들은 고수익을 미끼로 한 불'탈법 행위에 빠져들었다가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회사와의 채무 문제로 채권 추심을 받는 20대 청년 10명 중 2, 3명은 보험설계사라는 게 보증보험업계의 설명.
취업준비생 박윤희(가명'25'여) 씨는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다가 1년 만에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보험사 대리점 관계자는 박 씨에게 이미 계약을 해지한 고객 명의로 '허위 보험'을 만들어 수백만 원의 실적 수당을 받은 뒤 12~15개월간 보험금을 대납하면 목돈을 쥘 수 있다고 유혹했다. 보험사 대리점에서는 다른 고객의 정보로 보험에 가입한 뒤 본사의 확인 전화를 받기 위한 '대포폰'까지 박 씨에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명의 도용으로 5건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박 씨는 수당 선급금 등 1천500만 원을 손에 쥐었지만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 250만원을 감당하지 못했다. 보험사는 보험설계사가 모집한 보험 계약이 일정 기간 이상 유지되지 않으면 실적 수당을 되돌려받는다.
결국 박 씨는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고, 이미 받았던 수당을 되갚지 못해 채권 추심에 시달리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박 씨는 "심지어 가족 명의로 위장 취업시켜줄 테니 허위 보험에 가입하고 수당을 받으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개인 정보 및 명의 도용과 사기, 사문서 위조 등 각종 불법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찰과 금융당국은 단속에 손 놓고 있다. 보험료 대납은 엄연한 과징금 부과 대상이지만 적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금융감독원이 올 상반기 적발한 보험업계의 위법행위 40건 가운데 보험료 대납은 3건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가 불거져도 이미지 손상을 우려한 보험사들이 내부 징계만 거친 뒤 숨기기 일쑤"라며 "확실한 증거 없이 기업 내부를 마구 들춰낼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해명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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